금수강산 누비고 다니기

덕적도-보물 같은 큰물 섬

수심修心 2013. 4. 14. 16:36

 

 

 

 


  

덕적도

 

보물 같은 큰물

 

 

 

 

 

 

 

-2001 8 여행

 

 

   

 

                 그야말로 시절 인연, 장소 인연이 맞아 떨어졌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고, 학생들이 개학, 개강을 준비하던 , 안양에서 가깝고도 쉽게 다다를 있는 인천 연안 부두에서의 출발... 쾌속선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동안, 옹진군의 군도들이 늘어선 모양새는 마치 조물주 손이 밀가루 반죽을 떼어놓은 , 이곳에 ... 저곳에 뚝뚝...

          없어졌나 하면, 새로운 섬이 나타나곤 하였다.

 

          덕적... 큰물...

          때를 맞춰 다다른 그곳은 -조금 과장하여- 거의 원시적인 평화와 고요함이 배어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섬이었다. 나중에 섬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 덕적은 관광지로 개발되고 나서도 인심이나, 모습이 별로 변하지 않은 곳이라 하였다. 터줏대감들이 그렇게 얘기할진대, 느낌은 일러 무삼하리오?

  

          비어 있는 ...

          그러면서도 자연의 풍광은 빼어난 ...

          그러면서도 주민들의 삶은

          거의 그대로 이어져 오는 ...

          그런 곳을 그렸었다.

          그리던 곳을 만났다.

 

          미리 전화로 예약한 덕에 선착장에 마중 나와 있던 민박업자의 차를 타고 , 2 3 짧은 여정의 짐을 곳은 큼지막하면서도 농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포리 한옥.

          천주교 성당 신도회 회장이신 인회장님 댁!

          대문을 들어서면 제법 높은 서까래가 반겨 주는 그런 곳이었다

 

 

             .

          한산하다 못해, 사람이 그립기까지 서포리 바닷가 식당에서 낙지볶음으로 점심을 먹고, 2킬로미터에 이르는 서포리 개펄을 걸어서 왕복한 다음, 해가 떨어질 즈음 실로 오랜만의 해수욕을 즐겼다.

          뻘 물이라 맑지는 않았지만, 소나무가 그윽한 향취와 맵시를 뽐내고 있는 바닷가 풍광이 이를 상쇄시켜 주고도 남았다

 

          저녁은 가볍게 라면으로 마무리하고, 밤바다에 나갔다.

          젊은이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도시에서 대대적으로 하는 불꽃놀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멋졌.

          다, 아주 가까이에서 폭죽이 터졌으므로, 안전 사고가 날까 걱정 되긴 하였다.

 

          한편, 바닷가 송림 상가 길에는 비교적 젊은 아빠와 여섯 되어 보이는 귀엽게 생긴 딸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 딸은 모습만큼이나 앙증맞은 손바닥만 티셔츠와 7 바지를 데다가, 머리 모양은 맥가이버 풍으로 멋을 내었다.

          머 끝부터 발끝까지가 쪼매한 예술 작품 바로 그것이었다!

          훈훈 부녀의 모습에 눈길이 끌려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계집 아이가 뒷짐을 지고 걷는 아빠 모습을 흉내 내려는지, 미처 돌려 다 맞잡아 지지도 않는 팔을 허리 뒤로 감고 아장아장 걷는 아닌가?

          얼굴이 아이와는 달리 까무잡잡한 아빠가 고개를 돌려 모습을 목격하고, 자신도 너무 신기한지 만면에 미소를 띠고는 보세요! 보세요!” 하였다.

          정말로 우리만 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광경이었다.

          신기하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풍경...

          맘 같아서는, 펴서 근처에 대고 시각에 잠들지 않은 주민들은 나와 보세요!’ 하고 장난스럽게 외치고 싶을 정도로...

 

          도착 날 밤에는 모기를 비롯한 것들이 지치지도 않고 놀랍도록 성실하게 자신들의 본업을 완수하는 바람에 괴로웠지만,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집이 더욱 좋아졌다.

          딸 수도꼭지 하나가 전부라, 간이 샤워장이라고 부르기에도 어설픈 그저 사방 막힌 수돗가였지만, 조선 반만 (?) 함지박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하는 시원~ 샤워도 좋았었다.

          덕적도가 적송에서부터 어린 소나무까지 소나무로 뒤덮인 섬이어서 그런지, 섬치고는 너무도 맑고, 풍성하고, 차디찬 물을 없이 있었다.

          그 물을 바가지만 뒤집어쓰고 나면, 머리통이 통째로 얼어붙는 같았다.

 

    

          이튿날 새벽.

          일찍 일어나 서포리 바닷가 모래밭, 진흙 밭을 1시간 뛰다.

         모래밭 위를 뛰는 것은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진 체험이었다.

         조 , 집에서 가져온 식빵으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고, 진리를 향해 출발하였다마도 덕적도에서 제일 좋은 식당임에 틀림없는 진리의 도우 가든에서 점심을 먹기 위하여...

         땡 아래 8킬로미터 산길을 걸었지만, 구비를 때마다 선물처럼 나타나는 바다 풍경과 소나무 숲을 비롯, 우거진 나무들 덕에 환상적인 풍광을 즐기며 산책할 있었다.

          낙조대落照臺 정자에서 보이는 서포리 바닷가는 그대로 폭의 그림이었다.

          진리로 향해 가는 도중에 마침 지름 해수욕장이 나타나기에, 내려가 보았다.

          구부러진 늙은 소나무 그루가 원시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고요한 바닷가...

          한낮의 바다는 끝도 보일 정도로 멀리 나가 있었고, 그렇게 드러난 위에서 사람들이 소라, 우럭 등을 잡고 있었다.

 

          흔치 않은 풍광에 넋이 나가 있다가, 덕적 고등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학교 교정 안의 송림은 섬에서 가장 빼곡하고 아름다워 소문이 있다고 한다.

          길쭉하게 구부러지며 이어져 있는 특징 없는 학교 건물을 옆으로 약간 비껴서 송림이 있고, 저쪽으로 뻘과 바다가 펼쳐 있었다.

          아!

          이 학교 아이들은 얼마나 사치스런 풍광을 누리고 있는가?

          덕적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덕적 중학교를 다닐 것이오, 덕적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덕적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것이었다.

          이 붙여 건축되어 같은 학교나 다름없는 학교들을 말이다.

          정서 교육이 어떤 교육보다도 우선한다고 믿고 있고, 감수성도 실력이라 믿는 눈에 그때 하필 방학 중이라 운동장에 보이지는 않는 학교 재학생들의 행복한 현재, 창의적인 미래가 보이는 듯하였다.

          심지어 나는 대학교도 캠퍼스가 아름다운 학교가 제일 좋은 학교라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학교를 나오면서 사람들한테 물어 보니, 사소한 문제점이 생겼다.

          도우 가든은 덕적 학교에서부터 쳐도 만만치 않은 재를 하나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생과 나야 걷기를 워낙 좋아하니 문제없지만, 나이 드신 어머니가 땡볕에 하나를 넘으실 있을 것인가?...

          생 끝에, 도우 가든에 전화를 혹시 우릴 데리러 있겠느냐 예의 바르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선선히 그러마 하였을 아니라, 단숨에 봉고차를 몰고 우리를 태우고 갔다.

          (전 , 전화로 위치 등을 물어 보았을 , 식당 아저씨는걸어오시다 다리 아프시면 전화주세요. 모시러 갈게요.” 라고 먼저 제안을 해준 터였다.)

 

          도우 가든은 진리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우리는 식당 건물 , 차양 평상 위에서 우럭 , 매운탕 푸짐한 상을 받았다...

         식사를 하고 나니, 박이 주인 딸아이가 포도 접시를 들고 와서는이것 드셔 보시래요.” 하였다.

         바 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매력적인 갈색 피부에 까만 눈동자, 그리고 순박한 말씨에 반해, 나는 예쁜 계집아이를 ~ 안아주었다.

 

          식사 식당에서 나오면서, 산책으로 이미 피곤해진 어머니는 딸들을 교회에 데려다 주러 차를 몰고 나서는 식당 아저씨 차에 고맙게 편승하여 민박집으로 먼저 가시고, 동생과 나만 석양이 아름답다는 북리 몽돌 해변(7~8킬로미터) 향하여 길을 떠났다.

         서포리에서 진리까지와 마찬가지로, 가는 길에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평지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시원 시원 걸을 있는 나지만, 오르막은 쉽지 않다.

         따라서 내게는 깔딱 고개 보이던 재를 수도 없이 넘었지만, , 바다, , 나무, 시골집들이 함께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할 있음에 우리는 행복하였다          

 

           벌써 언제부터 이렇게 종일 걷기만 하는 여행을 꿈꿔 왔던가?

          가다 목마르면, 주민들이 나와 앉아 있는 길가 집에 들어가 시원한 수돗물로 목을 축이, 물통까지 채운 다시 걷곤 하였다.

          몇 덕적도 원주민들에게서는 설명할 없는 품위가 느껴 졌다.

          말 느렸지만, 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주민들 사이의 단합이 되어 있는 같았다.

 

    

           드디어 우리는 도저히 나올 같지 않던 몽돌 해변에 도착하였다.

          그때는 이미 해가 넘어가려고, 서쪽 하늘의 눈자위가 발그스름해 지고 있었다.

          또 목이 말라진 우리는 해변 가게에서 이다 캔을 하나 샀다.

          그런데,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가게 상인은 파라솔 아래 앉아 음료를 마시는 우리에게 다가 와서, “해넘이 , 가까이 가서 조용히 들어 보세요.”라고도 하고, “ 여름에는 바닷가 사방에 꽃이 핀답니다. 인간 !” 이라고도 하며 묻지도 않은 말들을 주었다.

          바닷가에는 몽돌이라는 이름 그대로 굵은 자갈들만 빼곡하였고, 자갈 위를 걷다 보면, 새까맣고 고약하게 생긴 벌레들이 여기저기서 스믈 스믈 몸을 드러냈다가는 사라지고 하였다.

           마침내 리가 기다리던 풍경...

           해가 지기 시작하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감동이 밀려 왔다...

 

          석양을 흠뻑 음미하고 우리는 마침 서포리로 돌아가기 위해 봉고차를 대절하여 놓았다는 젊은이들 틈에 끼어, 우리 몫의 차비를 나눠 내고 차에 오를 있었다.

          거 하루 종일 걸려 쉬엄 쉬엄 다다랐던 길이었건만, 돌아올 때는 20여분 만에 주파해 버렸다.

          오 , 열어 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시 덕적을 북에서 남으로 재빨리 훑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다.

          민박인 인회장님 댁으로 돌아와서는, 아침에 성철 아재가 직접 캐서 건네 동적 고추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밤바다를 산책하였다.

           머리 하늘의 별들이 가깝게 느껴 졌다.

 

 

            셋째 .

           상철 아재가 출발시각에 맞춰 우리 짐을 모두 옮겨다 준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지름 해수욕장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는 해수욕장 근처 허름한 식당 평상에서 바지락 칼국수, 해물 파전을 먹고, 멀리 뻘이 바라보이는 지름 해수욕장의 송림 아래 휴대용 돗자리를 , 호사스런 낮잠을 즐겼다.~~~

 

           단잠을 즐기고 나는 이번엔 혼자서 다시 덕적 중학교에 보았다.

          날과 달리 시간 여유가 있어, 송림 아래도 걸어 보고, 덕적 초등학교 1학년 1 교실에도 들어가 보았다.

          자그마한 교실에 그보다 작달막한 책상 여섯 개가 쪼르르 놓여 있었다.

          그 출신은 아니지만, 오랜 초등학교 시절의 향수를 느끼며, 나는 조금 게서 머물다 나왔다.

 

           동생과 다시 합쳐서 물어 , 잠시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하였다

         상철 아재가 우리 어머니를 차에 태워 먼저 선착장에 모셔다 놓고는, 조금 있다가 다시 차를 몰고 오더란다.

         우리도 선착장까지 실어다 주려는 갸륵한 생각에서였다나...

         그래서, 우리는 걸으려고 섬에 왔으니, 생각은 고맙지만 우리는 걸어갈 거라고 말했다고...

         어쨌거나, 상철 아재의 자상한 마 씀에 당연히 감받을 밖에...

         상 아재는 여름 외에는 의정부에서 산다는 데도, 검게 그을린 순박한 모습이 오히려 섬 사람들보다도 원주민 같아 보였다. 게다가 말을 때마다 얼마나 수줍어하던지...

         20 후반 정도의 아재(?) 같이 지내면서 볼수록 풋풋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청년이었다.

         착한 아재,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게 주었던 섬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후 5 넘어 배를 탔다.

 

    

          쾌적하고 설비도 좋은 쾌속선!

         여정의 3분의 2 지났을 무렵, 배의 2 창문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던 우리에게 선원 사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우와~~~!

         배 후미 쪽으로 터져 나오던 시원하고도 하얀 파도 거품!

         마 우리의 커다란 배가 연속적으로 샴페인을 터뜨려 대는 같았다.

         우리 여행의 피날레는 이렇듯 근사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덕적도는 특별한 섬이다.

          인천에서 겨우 시간 거리지만, 거의 묻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이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쉬다 가시라는,

          섬은 쉼터를 제공하되,

          간섭하지 아니하였다.


          나그네는

          꼴리는 대로

          즐기면 그만이었다.

 

 

          이제까지는 제주도가 환상의 섬이었는데, 앞으로는 덕적도가 리스트에 포함될 것 같다.   

          훗날 조용히 쉬며 글을 쓰고 싶을 , 다시 찾으리라...

  

 -수심修心

 

 


  

참고:

  덕적도 페이지의 소개란에 보니, 원래 주위의 수심水深 깊어 섬을 물 섬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다가 훗날, 한자어로 덕적도德積島 것이고

  소개를 듣고 보니, 덕적도의 보통 알고 있는 명사로서의 , 아니라, 형용사로서의 확실한 같다.

  말 그대로, 물이 모여 축적되어 있는 곳이란 뜻의 물 섬...

 

  여담이지만, ‘자에 명사 아니라, 형용사적 뜻이 있다는 것을 내가 처음 알게 계기가 있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영어회화 클럽을 같이 하던 다른 학교 남학생이 자기 이름에 썼다.

 그런데, 명석하고 공부 잘했던 아이가 자기 이름 뜻을 정확히 알아 달라고, 우리에게 또박또박 설명 주었던 것이다.

 친구 덕에 강남 가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친구 사귄 덕에 나는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지식을 놀며 동냥으로 얻어 들은 것이다.

  뒤늦게 나마 전한다.

  "고맙다. 친구야!

   고맙다. 덕문!"


  여하튼 놓고 보니, 수심修心 수심水深 깊은 섬의 수심水潯(물가 또는 물녁)에서 노닐다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듯..


*사진 설명:

젊은 도반 민지가 전라남도 나주 쪽 염색 체험관 체류 시 찍어서 내게 보내준 사진


사실, 큰물 섬에 갔을 때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기에, 이 글에 사진을 올릴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헌데, 도반의 이 사진 한 장이 그 바다, 그 섬에서 보았던 시원한 푸른빛을 떠올리게 하였다.

글 올린 한참 후에 이 사진을 첨부하는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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