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로 거듭나기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백일 자원 봉사: 첫째 이야기

수심修心 2013. 7. 1. 18:22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백일 자원 봉사

-첫째 이야기-

 

 

 

 

 

 

 

          1)"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옵니다.": 분홍 면 손수건 위에 새겨진 글

           원래 계획은 이랬다.

          ‘4월 중순에 시작되는 월정사 단기 출가 학교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하자.’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월정사 체류는 예정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이런 저런 변수가 생기며, 생전 처음으로 백일기도까지 동시에 진행하게 된 것이다.

           2008년 봄에서 여름에 걸쳐 내게 일어났던 참으로 아름답고도 좋은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월정사에 처음 간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3학년 가을 수학여행 때 단체로 설악산 쪽으로 여행 갔다가 월정사에 들렀었고, 유명한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그 아름다움에 친구들과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십 년 후 월정사에 자원 봉사자로 도착한 내 첫 인상은 ‘생각보다 꽤 춥다.’였다. 경기도 집에서 떠나올 때에는 이미 사방에 꽃이 피어나고 있었는데, 오대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꽃은커녕 나무 잎사귀도 나지 않아,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날씨야 어쨌거나...

           원주실에서는 나를 공양간 자봉(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스스로를 부르는 약어)으로 배치시켜 주셨다. 나는 이미 그 전 몇 년 동안 매해 여름 혹은 가을에 순천 송광사 공양간 등에서 자봉을 해봤던 터라, 즐겁고 고맙게 그 일을 시작하였다.

 

           월정사에서 자봉 일을 시작한 지 며칠 째 되던 날 오후.

           공양간 자원 봉사자는 보통 점심 먹고 뒷설거지 끝나고 나면, 몇 시간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공양간 일도 조금씩 손에 익어가기에 모처럼 느긋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숙소였던 서별당 방을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청류다원淸流茶園으로 향하였다.

           그날은 내가 도착한 후 처음으로 모처럼 햇살이 나와 있었다. 사방의 자연은 여전히 칙칙한 색깔이었지만, ‘기어코 이곳 오대산 자락에도 봄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오후...

           이제 추위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는 듯, 청류다원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원 내부에도 기분 좋은 봄기운이 돋고 있었다. 찻집 보살님의 미소 띤 친절한 인사에도 봄이 묻어 있었다. 절에 딸린 찻집이 흔히 그러하듯, 청류다원에도 차를 마시는 나무 마루 공간, 온갖 다기, 다구, 차 등을 파는 판매 공간이 있었다.

 

           나는 기분 좋은 햇살을 만끽하며 찻집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그러다가, 손 제작 작품인 면 손수건 위에 쓰인 문장에 눈길이 멈추었다. 분홍 면 손수건 위에는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제 어찌 봄을 막을 것인가?

 

이제 어찌

봄을 막을 것인가?

저기 금강문 위에 새겨진 울뚝

불뚝

근육질 금강역사님들이라 한들, 어찌

막을 것인가,

봄의 내왕을?

한반도 제일 튼튼한 둑이라 한들, 어찌

막을 것인가,

홍수같이 밀려올 우리의 봄을?

 

오대산 이 쪽에도 따뜻한

마음의 당신들, 포근한

마음의 당신들이 많고 또 많을

터인데, 대체 어찌 막는단 말인가?

대관절 어찌 멈추게 할 것인가?

냅다 쳐들어오는 봄을?

 

어차피 와버릴 봄...

     내왕이 예정된 봄...

 

따뜻한 마음들이 힘

모아 밀어 보내고 있는

봄이니, 오는

봄 막느라 힘

빼지 마세.

봄일랑 그냥 받아들이세.

 

못 이기는 척, 눈감아 줌세.

이번 기회 놓치면 제 딴에는

오래 기다려야 할 테니,

저 좋아 오겠다는

봄이니,

저 좋은 대로 하게 둠세.

 

겨우 내내 언 흙 속에서,

차디찬 나무 둥치 속에서,

꽁꽁 숨어 살았을 위인이니,

답답한 가슴만 두드렸을 위인이니,

활개 치고 돌아다니게 놔둡시다.

속 시원히 산바람 쐬게 둡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니,

인심 한 번 씁시다.

공덕 한 번 지읍시다.

 

봄님! 이제 혼저 옵서예.

맨 손으로 옵서예.

그냥 오기만 합서예.

체류 허가증 다 받아 놨어예.

 

!

봄!

봄!

 

잘 왔어예.

오래

오래

눌러 계시다 갑서예.

 

 

 

 

          2)지장암: 완벽한 긴장 이완의 순간들

           나는 이미 블로그의 다른 글들에서 지장암에서 내가 가졌던 좋은 시간들에 대해 썼고, 그 중 어딘가의 글에 지장암 사진도 몇 장 올렸다. 여기서는 그 외 얘기를 덧붙인다. 

           지장암은 월정사 뒷문을 빠져 나와 지장교를 통해 오대천을 건너면 바로 나오는 비구니 암자이다. 나는 월정사에서 새벽 예불, 아침 공양, 공양간 뒷정리 후 천천히 걸어 지장암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아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월정사에서도 거의 늘 아주 편한 마음으로 살았지만...)

           나는 보통 지장전 바깥 모퉁이 야외 돌 차탁에서 스님들이 누구나 마시라 준비해 놓으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꼭 지장전에 들어가 몇 십 분씩 앉아 있곤 하였다. 비구니 사찰(이름만 암자일 뿐, 이곳은 번듯한 규모의 절이다) 특유의 섬세한 배려는 지장전 마룻바닥의 난방에서도 느껴졌다. 나중에 지장전 담당 스님의 설명을 통해, 나는 지장전 바닥이 그리 따뜻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즉, 담당 스님들이 법당 마룻바닥의 나무 몇 장을 들어내고 아래로 내려가 아궁이 불을 때시는 덕택에 그렇듯 하루 종일 법당 바닥의 온기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또한, 지장전에는 거의 늘 불단마다 꽃꽂이가 있었다. 보기 예쁜 것은 물론, 향기도 정말 좋은 꽃들이었다.

           아침에는 지장전 담당 스님 외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 해도 잘 들어, 홀로 참선을 하기 참 좋았다. 그래서, 나의 지장전에서의 아침 참선은 월정사 체류 80일째 정도까지 계속되었다(그 시점에서 지장전 참선을 그친 이유는 월정사에서의 기도에 좀 더 집중하라는 월정사 스님의 말씀을 들었던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츰 자세한 사항을 밝히게 될 것이다.).

 

          100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지장전에서 거의 매일 아침 뵙던 분이 한분 계시다. 바로 지장전 담당 땅줄기 스님1)이시다. 강원 학인 스님이셨는데, 내가 지장전에 들어서면 조용히 미소를 띠시며 먼저 “반갑습니다!”하셨다.

           스님은 매일 아침 걸레를 손에 드시고 법당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 정리하셨다. 월정사에서의 나의 하루 일과는 거의 매일 비슷하게 돌아갔기에, 내가 지장전에 들르면 스님이 청소를 하시는 중이거나, 청소를 이미 끝내신 후, 바로 옆 칸막이 뒤 쪽에서 다른 소임을 보시고 계셨다.

 

           그런데 능금처럼 발간 볼, 흰 낯의 앳된 외모를 가진 땅줄기 스님은 정이 많은 분이셨다.

           내가 참선을 하고 있으면, 벗어서 옆에 개어 놓은 나의 외투 위에 사탕 봉지, 예쁜 포장의 작은 쿠키 봉지, 혹은 귀한 과일 등을 조용히 놓고 사라지시곤 하였다. 한 번은 참배를 마치고 묵언 속에 합장 반배하고 법당을 나가는 나를 가만히 부르시곤, 나비 모양 책갈피를 건네주시기도 하였다.

           이렇게 젊은 비구니 스님과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아무도 모르는 ‘우정’(이렇게 말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지도 모르지만, 뜻만 전달되길 바라며...)을 쌓아 갔기에, 100일 회향 날에는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 날, 오전에 회향하고 적멸보궁에 올라갔다가 산을 내려오는 길에 지장암에 들렀다. 땅줄기 스님께 간단히 인사만 드리려고 들렀었는데, 스님은 이따가 저녁 공양은 지장암에 와서 들고 가라 조용히 권하셨다.

 

           그래서, 그날 저녁 때 스님 말씀을 따랐다.

           오대산 체류 기간 처음으로 지장암 공양간에 들어가, 비구니 스님들이 깔끔하게 차리신 짜장면, 콩고기 케첩 볶음, 땅콩 조림 등을 푸짐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땅줄기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스님이 곱게 포장한 봉지 하나를 건네시며, 가져가라 하셨다. 스님이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에 참배 가셨을 때 사 오신 것이라며... 포장을 풀어보니, 지장보살님이 정교하게 새겨진 나무 불감佛龕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휴대용 법당 또는 이동식 법당이라고나 할까?

           불감을 열어, 단아하게 새겨진 지장보살님을 뵙는 순간, 나는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어찌 이런 귀한 선물을 스님께 받을 것인가?...’ 그러나 선물을 건네시며 덧붙인 짧은 말씀 속에 스님의 진심이 가득하였기에, “고맙습니다.”하고 받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의 어머님이 지장보살님을 정말 좋아하십니다. ‘지옥 중생이 다 구제되기 전에 나는 결단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하셨던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너무도 좋아하시거든요...

            스님 뜻 고맙게 받아서, 이 불감 저희 어머니께 갖다 드리겠습니다.”하였다.

           말 난 김에 말을 하자면, 우리 어머니는 사불寫佛 하여도 꼭 지장보살님 사불만 하신다. 사불하실 때에는 우선 향을 하나 피운 후, 돋보기를 끼고 앉으신다. 그런 후, 100장짜리 사불 공책에 정성들여 한 줄, 한 줄 지장보살님 모습을 베껴 그리신다. 그런데, 어머니가 베껴 그리시는 지장보살님은 참 고우시다. 물론 밑바탕 그림이 고와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베껴 그리는 불자의 간절한 마음이 거기에 묻어나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100장을 모두 다 정성껏 그리시고 나면, 어머니는 백중 등 특별한 날에 수원의 수원사에 가지고 가서 다 태워 버리시곤 한다. 살아있는 중생, 목숨이 다한 중생들 모두 성불하라는 염원으로...

 

           가득한 마음을 몇 줄에 줄여 말해버렸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장전 아침 참배는 월정사 체류 중 내가 정말 좋아했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얼굴만큼이나 고운 땅줄기 스님의 마음을 받으며 나의 마음도 차츰 열려갔던 그런 해맑은 시간들, 긴장 이완의 시간들이기도 하였다.

 

 

 

 

           3)숭고한 풍경 속으로의 아침 포행

           지장암에서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난 다음에는 보통 산 위 쪽으로 올라가는 아침 포행을 하곤 하였다. 유난히 맑은 오대산 공기를 마시며, 오대천을 쭉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이 길은 처음 20 포장도로를 걷고 나면 드디어 흙길이 나온다.

          폭이 제법 넓은 오대천은 물 양은 풍부하다 할 수 없지만, 물이 아주 맑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오대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침 포행은 하루하루가 늘 새로 맞는 아침처럼 신선하고 기분 좋았다.

           특히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아침에는  앞 쪽 저 먼 계곡에서부터 산 정상 쪽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곤 하였는데, 그 경치가 정말 압권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동양화- 바로 그것이었다.

           말갛게 비치는 하늘 옷을 입은 고운 선녀가 하강을 해도 별로 놀랄 것 같지 않을 정도의 신비한 풍경이 거기 있었다.

           그런 정갈한 자연 속에서, 청정한 빗물을 머금은 공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 좋았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길에서는 월정사에 살면서 알게 된 스님들을 비롯한 대중들과 마주치기도 하였다.

           월정사에서 단기 출가 행자 생활을 한 뒤, 월정사 직원이 되어 종무소의 든든한 한 축을 지탱해주시던 거사님이 한 분 있었다. 그 분 부인은 위 절 상원사 직원이었는데, 아침에 아내를 근무지에 차로 모셔다 주는 길에 또는 게서 되내려오는 길에 경적을 ‘빵빵!’ 울려서 내 걸음을 멈추게 한 뒤, 나와 몇 마디 상쾌한 아침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어떨 때는 주지 스님이 자전거를 타고 산 위 쪽에서 내려오시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위에서 자전거 한 대가 내려오면 ‘모르는 사람이겠거니...’하고 길 한 옆에 잠시 비켜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이 지나치시는 자전거 위의 주지 모습을 알아보고는 황급히 합장 반배를 하기도 하였다.

           또 어떨 때는 젊고 해맑은 원주 스님이 지나가시다가 반갑게 웃으시며, ‘오늘 하루 힘냅시다!’ 하시어, 없던 기운도 쑥~ 올라오게 하셨다.

           또한, 젊은 자봉이나 그새 친해진 직원 누군가를 만나, 의좋게 같이 길동무하며 아침 산책을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아침 포행 길에 만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서로의 기분을 추어주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럴 때면 대부분의 산 사람들이 왜 호쾌하게, 경쾌하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계곡물 소리, 산새 지저귀는 소리에 자기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동적으로 톤을 높이게 되므로 그럴 것이었다. 씩씩거리며 상대와 한바탕 붙을 상황이 아닌 바에야, 평상심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에는 마음도 덩달아 밝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듯 내게는 대자연 속 시골 절에서의 아침 시간이 소중하다.

          그래서, 어느 절로 자원 봉사를 가든, 새벽 예불, 아침 공양 그리고 아침 산책을 제일 좋아하며, 아침 시간만 잘 보내고 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무엇을 해도 큰 상관이 없을 정도다. 

 

 

 

 

          4)석조 보살 좌상의 부드럽고 넉넉한 미소

           고려 시대에 조각되었다는 것만 알 뿐, 연대도 작가도 밝혀지지 않은 이 보살님은 내가 월정사에 있을 때는 성보 박물관에 모셔져 있었다. 보살 좌상 조성 시기를 최소한으로 잡아도 600년 이상 되었을 것이니, 비바람의 피해를 더 이상은 입지 마시라고 절 측에서 그리 하였을 터이다.

           나는 울력하다 틈이 날 때면 절 마당 한켠의 박물관에 들어가서 이 보살님께 선 채로 반 배 하고 나서, 돌로 만들어진 보살님을 한 동안 바라보다 나오곤 하였다. 그러면 부드럽고 밝은 표정에, 뭔지 모를 유쾌함이 번지는 석조 보살님의 미소에 내 마음도 차분히 정돈되곤 하였다.

           어떤 날들에는 박물관의 해설사 거사님이 방문객들에게 좌상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 때에 마침 도착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한 옆에서 해설사 분의 설명을 경청하기도 하였다.

 

           런데..

           솔직한 나의 맘을 털어놓자.

           나는 석조 보살님을 실내조명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답답하였다. 그러면서, 보살님이 팔각 구층 석탑 앞에 한 쪽 무릎 꿇고 계셨었다는 그 때가 그리웠다. 오대산의 맑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시며 절 마당 한 가운데 계셨을 때에는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때에는 박물관 속에 계실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셨을 것 같다. 적광전寂光殿 안에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 토함산 석굴암 부처님을 본떠 만들었다는 그 부처님을 향하여 두 손 모아 공양물 올리는 자세에서도 더욱 절절하고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을 듯싶다.

 

 

석조보살좌상의 미소

 

수즙은 미소 아닌가?

그러면서 부드럽게 열린 미소라네.

흡족한 미소 아니런가?

그러면서도 살포시 가리어진 미소라네.

 

허허! 그런가?

허면, 정감어린 초탈의 미소인가?

허면, 번뇌 끊긴 법열法悅로의 초대인가?

 

 

-수

 

 

 

 

 

 

 

♣각주:

1)당시에 강원 학인스님이셨기에, 조심스런 마음에 코드명 비슷한 이름을 부여해 드린다.

   스님 법명의 한글 풀이라 보면 된다.

 

♣사진 설명:

  월정사 금강문을 들어서면 왼 편에 보이는 청류다원을 찍어 보았다.

 

  글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도 '석조보살좌상' 사진을 여기 올리고 싶었으나,

  내가 찍은 박물관 조명 속 석조보살님 사진은 너무도 기대에 미흡하였다.

  그러니, '석조보살좌상'의 모습이 궁금한 누리꾼들은 월정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거나,

  월정사 월간 <오대산 향기> 20132월호 17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