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로 거듭나기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백일 자원 봉사: 넷째 이야기

수심修心 2013. 8. 10. 23:04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백일 자원 봉사

-넷째 이야기(끝)-

 

 

 

 

 

          1)시간 초월 여행을 다녀온 듯했던 도감스님과의 차담        

           거의 늘 그랬듯, 그날 아침에도 산 위 쪽으로 포행을 했다.

          포행하는 동안 오대산 정상 쪽으로 신비스러울 만큼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종일 비가 내리셨다.

           안 그래도 오대산의 청정한 공기로 가득한 월정사는 비까지 내리는 덕택에 눈길 가는 곳 마다 사방이 다 맑고 시원해졌다.

 

 

           그런 날의 한낮.

           마침 공양간 앞에서 잠깐 마주친 도감都監 스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도감 스님이란 절에서 이런저런 사항을 관리, 감독하는 스님을 이르는 것으로 알면 될 것 같다.)

           “오래 계시는 분이니, 저와 얘기 한 번 나누셔야할 듯합니다.”

           그때 이미 체류 칠십 일 정도 지난 시점이었기에, 나 역시 도감 스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감 스님인 청운靑雲 스님은 가끔 예불 의식을 주도하는 부전 소임도 보셨고, 낮에는 드넓은 적광전에서 행자님들 몇 분을 모아놓고 몇 시간씩 경전 강의를 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디서 무슨 일을 보시든 늘 눈에 띠지 않게 조용히 다니셨고, 행자님들 교육 때에는 행자님 한 분, 한 분께 꼭 “~하십시오.”, “~입니다.”경어체를 쓰셨다.

 

 

           그날 저녁 예불이 끝나고 나서, 나는 스님 제안대로 신축 건물인 금강선원 교수사의 스님 방으로 차담을 하러 갔다.

           청운 스님은 평소처럼 조용히 예의를 갖춰 맞아주셨다.

           길쭉하고 좁은 스님 방 한 쪽 벽에는 시렁이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렁 위에는 불경 등의 책이 가득 꽂혀 있었고, 찻잔 등의 다구도 좀 있었다.

 

           스님이 손수 우려낸 녹차를 내게 권하시면서 편안한 차담은 시작되었다.

           스님은 당신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하실 때에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씀하셨지만, 내 얘기를 들으실 때는 주의를 집중하고 경청하여 주셨다.

           그렇게 들은 말씀에 의하면, 스님은 서른 살 가까운 나이에 아버님 따라 어떤 절에 가셨다가, ‘언젠가는 스님이 되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단다.

          그런데... 인생은 마음에 새긴 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미처 그 해가 다 가기도 전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셨단다.

           하여, 내가 조심스레 출가 동기를 여쭤봤더니, “모르겠습니다.” 하셨다.

 

           다음엔 내 차례로 하고 싶은 말을 청운 스님께 들려드렸다.

           8년 전이었습니다.

            저는 오랜 고민의 시간들을 가진 끝에 새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임시직이지만 하던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원래 저의 전공에 당시 하고 싶던 일을 결합하여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 일을 하면서 저의 잠재 능력을 개발하고 싶었고, 제게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후, 저는 제 앞에 새 길을 내는 심정으로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새 길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청운 스님은 녹차를 드시면서도, 집중하여 주의 깊게 내 말을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약간의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새 길이란 없습니다.

            스스로가 변하고 나면, 옛 길이라고 여겼던 그 길이 새 길이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이미 수 년 전의 일이라, 스님이 말씀하신 단어를 그대로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뜻은 그러하였다.      

 

          새 길과 옛 길...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인생에는 그저 하나의 길만 있을 뿐이리라...

          평생 자기 앞에 길 하나를 내다가, 이생에서 받은 몸이라는 먼지 부스러기를 이 땅에 흩어버리고 훨훨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리라...

          그러니, 도감 스님 말씀대로, 길 하나, ‘새 길’ 하나를 내어 놓고 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대화가 무르익고 나서는 좀 더 큰 틀, 큰 시각의 대화도 있었다.

           즉, 청운 스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화엄의 세계라고 하시면서, 특히 한국에서 그 징조는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셨다.

          화엄의 세계란 우주 만물이 서로 끝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동시에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는 생각 정도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주제에 몰입한 대화가 이어진 몇 십 분 동안의 차담이 끝나고 나서, 나는 스님께 감사 인사드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스님은 커다란 손전등 하나를 들고 나의 뒤를 따라 나오셨다.

           사실, 금강선원은 일부 건물만 덩그러니 세워졌을 뿐, 교수사에서 요사채까지의 길은 미처 다듬어지지도 않은 내리막 흙길이었다. 더구나 산중이라, 하지夏至를 눈앞에 둔 때였지만 이미 칠흑漆黑 같은 밤이 내려버린 그 길 주변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고,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

           청운 스님은 “주위에 아직 등 하나 변변히 없어서요.”라 설명하시며, 들고 나오신 손전등으로 내가 돌아오는 길을 몇 걸음 밝혀 주시고는, 차담 손님이 불 밝혀진 길로 안전하게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신 연후에야 교수사로 발길을 돌리셨다.

 

 

           나는 스님께 고마웠다.

           그렇듯 불자를 배려하며, 불자의 소소한 안위에 마음 써 주시는 스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깊숙이 고마웠던 저녁이었다.

           그리고 고마움과 병행하여, -까닭은 모르지만- 먼 먼 아득한 옛적 어느 시점으로 시간을 초월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스님의 소탈하면서도 넉넉한 마음 씀씀이, 차담 상대의 의견과 입장을 철저히 존중하는 자세,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가 되었든 귀하게 여기시며 예의를 다 갖춰 높임체를 쓰시는 말씨 등이 나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받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한 마디로, 인생에서 흔히 있지 않는 귀한 시간 그리고, 잠깐이지만 스님께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2)전나무 숲 속 벤치에서의 여유로운 낮잠

          이 글을 써내려오면서 몇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나는 기도 기간 내내 전나무 숲길에 자주 내려가 포행을 하였다. 아침, 점심, 오후 늦게 심지어는 저녁 예불 이후에도, 때를 가리지 않고,...

          그런데, 나는 전나무 숲길에서 포행, 쓰레기 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쉬고 오기도 하였다. 

 

           월정사 한 귀퉁이 비좁은 방에서 다른 불자와 같이 묵은 백일기도의 후반 두 달 동안, 사실 나는 방보다는 방 밖이 훨씬 편하였다.

           그래서 그 두 달 동안에는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면 거의 습관처럼 숲길 끝 지점, 일주문 직전까지 걸어 내려갔다.

           그 근처에는 숲길에서 이만큼 벗어나 나무들로 살짝 가려진 곳에 눕기 딱 좋은 벤치 몇 개가 있었다.

           거기서, 나는 피곤하고 졸린 몸을 그 중 한 벤치 위에 누이고, 얼굴에는 모자나 외투 같은 것을 살짝 덮은 뒤, 세상 편한 낮잠을 즐겼었다.

 

           비 온 다음 날을 제외한 날들에는 햇볕이 벤치를 적당히 달구어 놓았기에, 참으로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사실 따져보면 엄연히 사찰의 일주문 안쪽이니 경내로 쳐야 하는 곳이었지만, 나무 벤치에서 저 위 금강문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만큼은 금강문이 실제 일주문이라고 내 위주의 그럴듯한 판정을 내린 나는 그 거리만큼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면, 점심 포행을 나왔던 2~3명의 공양간 보살님들- 다시 말해 나의 옛 동료들(?)-이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쾌활하게 소리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속 편히 누워서 오대산 정기 다 들여 마시는 중인가?”

           그런 기분 좋은 아는 척에 나는 짐짓 못들은 척 대꾸도 않았지만, 얼굴에만은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곤 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더 깊은 낮잠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보통 그렇20분 정도  달디 단 낮잠을 즐기고 나면, 늘 상쾌하고 가뿐한 기분으로 잠이 깨이곤 했다.

           눈 뜨고 일어나 바라보는 숲길은 마치 동화에 나오는 마법의 숲길처럼 새롭고 신비롭기 조차하였다...

           햇빛은 키 큰 전나무들 사이로 빛나고 있었고, 초록 풀들은 평화롭게 자라고 있었으며, 야생화들은  어여쁘고 다소곳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도시 출신으로 평생 도회지에서 살아, 야생화 이름 하나 변변히 모르는 나이지만, 다행히 그 평화로운 숲길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숲 속에 있는 듯, 평화만이 주위에 가득하였다.

 

 

           전나무 숲길에는 근처 육수암의 비구니 스님들도 가끔 포행을 나오셨다.

           그런데, 한 번은 숲길에서 자주 마주쳐서 낯이 익은 비구니 스님이 대뜸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살님!

           어제 제가 이 전나무 숲길 포행하다가 멧돼지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러니, 숲길 걸으실 때 조심하세요.”

          이에 놀란 나는,

            “멧돼지요?

             멧돼지를 이 숲길에서 보셨어요?“하고 되물었다.

            스님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이셨다.

 

           그 말을 들은 후 며칠간은 숲길 벤치 위 달콤한 정오 낮잠을 포기하였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 울력의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면서 잠시라도 쉬고 싶었기에, 낮잠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도저도 다 잊은 채,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태평스레 낮잠을 청하였다.

           “멧돼지야 나오거나 말거나...

            모르겠다.

            나는 일단 잘 테다.”

          ........

 

 

 

 

          3)백일기도 끝내다

          100일 기도 마지막 한 달 동안에는 여름 단기 출가 행자님들이 해우소 청소를 자주 해주셨기에, 전반 두 달여 기간에 비해 내게 자유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그래서 적광전에서 참선과 ‘석가모니불’ 염불을 할 시간이 제법 많이 생겼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목젖이 심하게 부을 뿐 아니라, 코가 자주 막히곤 하였다.

          코가 막히는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며칠간은 하루 종일 휴지로 코를 풀어도 계속 콧물이 흐를 정도였다. 그러다가는 연이어 기침이 심하게 나오기도 하고...

          그래도 거기에 개의치 않고 나는 혼자서 있을 때에도, 대중이 모인 예불 시간에도 염불念佛하였다.

          앞서 말했듯, 예불 시간에는 한 시간 가까이 ‘석가모니불’을 염하였는데, 이때에도 대중과 목소리를 맞추어 큰 소리로 정근을 하였다.

          결국 기침이 너무 심해져서야 나는 예불 시간에 정근하기를 멈추고, 속으로만 ‘석가모니불’을 외웠다.

         

          마침내, 날이 가면서 힘이 점점 더 달리게 되면서는, 법당에 들어가서도 그냥 가만히 좌복 위에 앉아 석가모니 부처님을 바라보거나, 심지어 앉아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는, 그냥 넓고 푹신한 좌복 위에 푹 엎드려 한동안을 가만히 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울력과 기도로 몸이 많이 힘들어질수록 오히려 더욱 더 월정사에서 자신이 음으로, 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는 지에 생각이 미치며 눈물이 주르르 흐르곤 하였다.

          그렇듯 장기간, 안정적으로 편히 기도할 수 있게 해주는 월정사 대중들에게로 향한 고마운 마음이 들 때면,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 내렸다...

           그러면서 나의 내면이 여리고 순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맘속이 순해지면, 이런 깨달음도 이어졌다.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나는 올 데 와 있고, 봐야 할 사람들 보고 있다.

            이곳은 나의 인연 줄이 이끌어서 찾아온 곳...

            이제라도 이곳에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아! 오대산이여...’

    

           위에 언급한 목감기, 코감기 등의 현상은 사진쟁이 스님이신 현도 스님이 얼굴 볼 때마다 불러서 주시는 엄청난 양의 녹차, 그리고 동국대 재학생으로 방학을 맞아 월정사에 돌아오셔서 별좌 소임을 보시던 지엄 스님이 만들어 주시는 발효차, 연차 등을 많이 마시며 확 좋아졌다.

          내게 제대로 절하는 법을 자세히 일러주셨던 현도 스님은 위와 같은 증세도 절 명현 반응1)의 일부라고 말씀해 주셨고, 내가 보기에도 코가 줄줄 나오며 몸 속 나쁜 기운이 대거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렇게 백일기도 막바지에 이르던 어느 날 낮.

           나는 이미 어린 시절의 미소와 명랑함을 완전히 되찾았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큰 목소리로 시원시원하게 마치 사춘기 소년인양 말하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기도 하였다.

          삶의 때가 별로 묻지 않았던 그 시절로의 회귀... 그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즈음 전나무 숲길을 포행하며 산책객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모두들 여유롭게 행복한 한 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내게서 ‘나’라는 굳은 고정 관념이 빠져나가고 나니, 원래의 세상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물론, 월정사가 말 그대로 극락은 아니다.

           기도 기간 동안 피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따라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아흔 아홉 가지의 좋은 일, 좋은 사람들에 묻혀,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더구나, 한참의 기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당시 심각했던 그 문제는 참으면 견딜 수 있는 ’마장魔障’으로, 기도 기간 동안 반드시 온다는 큰 마장을 일선에서 막아주는 든든한 방화벽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싶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르지 싶다.

 

           해빙解氷...

           숙세에 걸친 두터운 업장의 얼음들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해빙의 느낌...

           나와 내 주위에 단단하게 얼어있던 모든 것이 마치 북극 얼음 녹듯 편하고 순하게 풀리는 느낌...

 

 

           백 일째 되는 날 오전에 회향하고, 오후에 적멸보궁에 참배하였다.

          저녁 예불 후 원주 스님께 “기도 마치고, 내일 갑니다.”말씀드렸더니, 뜻밖에도 스님이 “차담 한 번 합시다.” 하셨다. "뜻밖"이라고 한 이유는 원주 스님이 평소에 워낙 바쁘시고, 녹차도 썩 즐기시지 않는데다, 그로부터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으신 후 회복 단계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실은 원주 스님이 다른 자봉도 한, 두 명 더 차담에 초대하셨으나, 이쪽은 이런 사정으로, 저쪽은 저런 사정으로 막상 원주실 입구 차탁에 마주 앉은 사람은 (지금 기억으로는) 스님과 나 딱 둘 뿐이었던 같다.

 

           원주 스님과 나는 삼경종2)이 울리기 전까지의 두 시간 가까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당시 마흔 고개로 진입 중이시던 맑은 얼굴의 해여海如 스님은 다소 깐깐해 보이는 첫 인상과는 달리 대중 친화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스님은 한국 불교의 앞날을 생각하여, 젊은이들이 절 문턱 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셨다.

           그래서 젊은 자봉들에게 월정사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반가이 맞아 주시는 것은 물론, 친구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며 푸르른 청춘들의 앞길을 잘 이끌어 주셨다.

           스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절로 돌아와 하루, 이틀 쉬신 후, 대중들이 공양하던 공양간에 드디어 모습을 나타내시자, 많은 직원, 자봉들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스스럼없이 환호했던 것도 우리 중 대다수가 이 같은 스님을 편하고 가까운 친구처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주 스님과의 소중한 차담을 마치며 “100일 동안 원주 스님 사랑 많이 받고 갑니다.”라고 그간 고마웠던 마음을 솔직히 밖으로 표현하였다.

 

           돌이켜 보면, 정말로 고마운 절, 고마운 스님들, 고마운 인연들이었고, 원껏 기도하고, 울력하며, 좋은 인연들을 만난 시간이었다.

           또한, 자원 봉사는 봉사 자체의 의미보다는 '받음'의 의미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 시간들이었다.

           마음을 받고, 우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배움을 얻고, 그러면서 삶의 진실한 의미를 하나, 둘씩 깨달아가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수심修心-

 

 

 

 

 

♣각주:

1)명현 반응이란 절, 요가, 식이요법 등을 행하는 사람의 몸 상태가 좋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

  사람에 따라, 신체의 나빴던 곳이 더 나빠지기도 하고, 반응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2)삼경종三更鐘: 사찰에서 밤 9시를 알리는 종.

   삼경종이 울리면, 사찰의 대중들은 소등하며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사진 설명:

  체류 시에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을 찍어 보았다.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백일 자원 봉사

 

목차

 

 

 

첫째 이야기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옵니다.’: 분홍 면 손수건 위에 새겨진 글

♣지장암; 완벽한 긴장 이완의 순간들

♣숭고한 풍경 속으로의 아침 포행

♣석조 보살 좌상의 부드럽고 넉넉한 미소

 

 

둘째 이야기

♣현기 스님의 감동적인 시

♣옛빔 스님이 백일기도 권하시다

 

 

셋째 이야기

♣틈새 울력이었던 통역

  그리고, 봄 단기 출가 행자님들과의 선연善緣

♣해우소 청소와 산 쓰레기 줍기

 

 

넷째 이야기(끝)

♣시간 초월 여행을 다녀온 듯했던 도감스님과의 차담

전나무 숲 속 벤치에서의 여유로운 낮잠

♣백일기도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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