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작은 학교> 아이들
-지리산 자락을 노루처럼 뛰어 다니며 큰다-
내가 지리산 실상사에 간 것은 2006년 시월도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
가을이 깊어가던 때였다.
애초, 시월 중순에 경기도 집을 나설 때 한 달 남짓 예정으로 전라남도로 내려갔었고, 그 중 첫 2주는 이미 순천 송광사에서 템플 스테이 자원 봉사를 마치고 난 시점이었다.
하여, 예정 기간의 후반 3주 정도는 지리산 실상사 공양간에서 자봉을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몸은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지극히 고요하고 편안하였던 송광사에서의 자원 봉사를 마친 나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출발하여 광주를 거쳐, 버스를 몇 번 더 갈아타며 전라북도 남원, 인월을 지나는 기나긴 버스 여정 끝에 드디어 지리산 실상사에 도착하였다. 양쪽 절이 다 산골에 있는 까닭에 거리에 비해 긴 여정은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실상사에 도착하여 하루 이틀 지내보니, 옛 가람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공간에 자리한 몇 개 컨테이너 박스 교사校舍에서 공부하는 <작은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매일 아침 실상사 법당에 와서 108배와 간단한 예불, 조회 등으로 하루를 열고 있었다. 게다가, 아침 예불에 이어지는 수업 시간에도 컨테이너 박스 교사 뿐 아니라 담 너머 이쪽 절 마당 등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지극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습을 진행하였으며, 매일 점심때에는 이들 모두가 공양간에 들어와서 밥을 먹었다. 말하자면, 실상사는 절에 딸린 대안 학교인 <작은 학교>의 수업 공간의 일부이자, 식당 공간(공양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었다.
불교계 대안 학교의 이름이자, 보통 명사가 아닌 고유 명사로서의 <작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나의 인연은...
여기서 신기한 것은 그때만 해도 가건물이었던 공양간에서 자봉을 한 기억보다는 절 마당, 마을길을 오가며 마주쳐 사귀게 된 <작은 학교> 학생들, 자원 봉사 외국 선생님을 비롯한 그 학교 식구들 등과의 기억이 더 나의 뇌리에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중학교 과정의 어린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할 때부터 시작하여, 공부하고 놀고 사는 일상의 모습 중 일부를 곁에서 지켜보고, 점심에는 그들에게 상 차려주고, 같은 공간에서 밥 먹고, 휴식 시간의 학생들과 재미있고 신나게 대화한 기억들 말이다.
햇수를 따져보니, 그때로부터 어느덧 7년이 지났다.
게다가 <작은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내가 그곳을 다녀온 지 얼마 후 <작은 학교>는 컨테이너 가건물을 떠나, 계절 학교용 강당, 숙소 등의 건물들이 이미 들어서있던 근처 산 중턱의 <생명 문화 교육원>으로 아예 이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동안 교사校舍 뿐 아니라 적지 않은 것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니, 나는 그저 당시 내가 경험한 꽤 신기하고 놀랍고 긍정적인 중등 교육 현장의 한 면을 전하고자 할 뿐이다.
물론 공양간에서 지낸 일들이 <작은 학교> 이야기에 양념처럼 섞여들기도 할 것이다...
실상사 입구에는 ‘구산선문 최초 가람’이라는 뭔지 모르게 가슴 벅찬 나무 알림판이 서 있다.
이참에, <다음 국어사전>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뜻을 제대로 찾아보자.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중국 달마의 선법을 이어받아 그 문풍(門風)을 지켜 온 아홉 산문(山門). 곧 실상산문(實相山門), 가지산문(迦智山門) [...]’이라고 적혀 있다.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지리산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는 실상사.
허나, 내가 있을 때의 실상사는 아스라한 옛 영화가 안타까울 정도로 좀 쇠락한 모습이었고, 스님들이 몇 분 안 계셨는데, 그 스님들은 공양간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양하시는 듯싶었다. 더구나, 근처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작은 학교> 식구들이 공양간을 찾아 공양간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낮과 달리, 아침 식사 시간에는 공양하는 대중이 몇 안 되어, 자원 봉사자였던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말인즉슨, 새벽 예불을 보고 아침 공양을 한 후 몇 시간 동안 나는 나만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 공양 후에는 천왕문을 나서서, 맞은 편 산봉우리들에 붉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리산 자락의 너른 논밭 길 사이를 걸어 다녔다. 이곳은 앞산 산등성이가 온통 붉게 물들고 주위가 훤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해가 서서히 산등성이들 사이로 떠올랐는데, 잠시지만 해 뜨기 직전부터 해가 떠오를 때까지의 산 모습이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실상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주지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에 실상사는 심산유곡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절을 찾아 대중들이 절 주위에 모여들어 살게 되면서부터, 구산선문 최초 가람은 차츰 너른 논들 한 가운데의 평지에 덩그마니 서 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멀지 않은 곳에 기운 찬 산들이 둘러서 있는 평평한 땅을 딛고 다니며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는 일은 참으로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작은 학교> 학생들이 더러 혼자서, 더러는 두 서 너 명씩 무리지어 학교 쪽으로 걸어오다가 밝은 미소와 씩씩한 말투로 내게 인사를 건네 오곤 하였다. 시골 길에서는 이따금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인사도 주고받고 하듯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공양간에서의 점심시간에 조금씩 서로의 얼굴을 익히게 되면서는 오가는 인사말에 약간의 친밀감까지 더해졌다.
그런데 작은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씩씩한 말투에 덧붙여 자기소개, 자기표현이 능한 아이들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 혹은 좀 낯이 익은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히 내가 그들의 강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투명하게 상대를 대한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수다스럽지도 않고, 불필요한 경계심을 가지지도 않으면서, 상대가 말하는 것은 곧이곧대로 선선히 받아들여주는 한편, 스스로가 말하고 싶은 것, 또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리고 싶은 것 역시 앞뒤 재지 않고 ‘툭툭!’ 편하게, 그러나 예의바르게 털어놓는다는 뜻이다.
눈 뜨면 보이는 것이 수려한 산들이어서 지리산 봉우리들의 반듯하고 순한 모습을 닮아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학교 교육에 독특한 무엇이 있어서일까?...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위의 두 가지 모두 다 해당 사항이 될 것 같았다. 일반화시킬 일은 아니지만, 도시 어느 길거리에서 어쩌다 초등학생이나 중, 고생과 말을 섞어 보면, 대화 상대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건성건성, 마지못해, 심지어는 잘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에 더욱 더 시골 대안 학교 학생들의 몸에 배인 개방적 대화 습관이 놀라워 보였다.
바로 그들의 그런 좋은 습관 덕이었다.
도착 이튿날 아침 산책 중에 <작은 학교>에 들렀다가, 붙임성 있는 남학생 결이의 자발적이고도 친절한 안내로 내가 학교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컨테이너 교사였지만, 건물 바깥벽에는 아마도 선생님, 학생들이 합심해서 그린 듯한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교사 옆에는 얼핏 보기에 2층짜리 원두막 모습을 한 화장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위층은 원두막, 아래층은 화장실이었다. 헌데, 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난 사람은 몸속에 지니고 다녔으나, 밖으로 배출시키고 나니 오물이 되어버린 그것 위에 겨 한 바가지를 뿌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 땅바닥에서 좀 높은 곳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아래로 떨어져 쌓인 겨 범벅 인분을 손쉽게 수거하여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고, 이것이 최종 과정에서 밭에 줄 거름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더 말할 나위없는 자연 친화적 화장실이었다!
이렇듯 빛나지도 멋 나지도 않는 가건물 몇 개가 모인 학교였지만, 구석구석에 정겨운 시골 학교 냄새가 담뿍 배어 있는데다 주위 배경은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지리산 봉우리들이라 내 눈에는 이 학교 교정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특별한 모습의 교정만큼이나 좀 특별해 보였던 것이 <작은 학교>의 수업이었다.
즉, 대안 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 정규 학교와는 조금 차별화된 수업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공양간 울력 사이사이의 자유 시간에 <작은 학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가 마침 수업이 없어 비어있는 교실에 몇 차례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때 본 칠판에는 각 수업 시간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내게는 수업 제목부터 조금 독특해 보였다. 왜냐하면, 대부분 수업 제목이 무슨 토론 제목처럼 조금 긴데다 다소 철학적 느낌이 배어 있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절 마당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업할 때 곁을 지나가다 호기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수업 방식 역시 신선해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반 학교처럼 학생들 앞에 선 선생님이 다수의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열 명이 될까 말까한 학생들과 선생님이 편하게 서서 의견을 주고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도 자연스럽게 던지며, 한 발짝 한 발짝 씩 답을 만들어가는 와중에 사물의 원리를 깨쳐가는 듯싶었다. 얼핏 보면, 수업인지 놀이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엇보다도, <작은 학교> 학생들은 사방을 뛰어다녔다.
점심 먹으러 공양간에 들어올 때도 몇 녀석 씩 몰려서 신나게 뛰어 들어와 배고프다며 맛있게 먹고 갔고, 건너편 산 위에 있는 생명 문화 교육원으로 수업을 받으러 갈 때도 우루루 몰려 명랑, 활발하게 뛰어올라갔다 뛰어 내려오곤 했다... 그저 언제랄 것도 없이 그렇게들 늘 혼자서도, 몇 명이 어울려서도, 지리산 자락을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것이 그 아이들 일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였다.
“<작은 학교> 애들이요?
허구헌 날 산으로 들로 노루처럼 뛰어 다녀요.”
공양간에 일이 많을 때 일손 도와주러 왔던 마을 아낙들의 말이다.
산 아래 마을을 노루처럼 뛰어 다니며 크는 아이들...
모름지기 성장이 끝날 때까지의 아이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이렇게 커야 하는 것 아니던가?
헌데 무엇이 대체 이 땅의 대다수 아이들로 하여금 ‘책상 앞의 지식 창고’가 되게끔 등을 떠민 것일까?...
여기서 참고로 얘기하자면, 이 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인지라 학력 인정이 되지 않아, 장차 일반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가려면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무슨 수업을 받든 그와 별도로 각자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기본 실력은 닦아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이들이 수업 시간 외에 하는 취미 활동을 관찰하게 된 적도 있다.
어느 날 오후, <작은 학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 몇이 가건물 중의 작은 교실에 모여 동아리 활동으로 밴드 연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 그들의 연습에 방해될까봐 내가 낮은 목소리로 한 학생에게 잠시 서서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유롭게 즐기며 연습하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아이들이 연주를 중단하고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틈을 타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이 악기들은 누가 가르쳐 주니?”
“윗반 형들이 아랫반 동생들에게 가르쳐 줘요.
그러다가 윗반 형들이 졸업해 버리면, 아랫반이었던 애들이 그 아랫반 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요.
그렇게 계속 이어져요.”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왠지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취미 활동이라면 능히 그런 식으로 조금 더 아는 상급반이 하급반을 가르쳐가며 전체적인 연주 실력을 향상해 가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학생들을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상급반이 잘 모르는 하급반 동생들을 가르치며 깨우쳐가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더 이런 식의 학생들 간의 교내 전수 교육이 바람직하게 보였다.
대체로 예의바르고 서글서글한 <작은 학교> 아이들은 절 마당, 학교 앞, 동네 논길, 밭길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만나면 인사를 잘 하고 싹싹하게 굴었다.
그렇게 나와 그들이 서서히 서로 얼굴을 익혀가던 중에, 지리산 시골 중학교 학생들과 내가 좀 더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점심 후...
나는 요사채 방 앞에 앉아 잠시 따뜻한 가을 햇볕을 쬐면서 점심 공양하고 나온 아이들 몇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적당히 기분 좋은 가을 햇살이 비치고 있는 데다, 맛난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게다가 오후 수업 시간 전까지 조금의 여유 시간도 있던 아이들은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전에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는 얘기를 듣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박에 입 모아 “프랑스어 가르쳐주세요!”하였다. 그 중 붙임성 많은 한 여학생은 내친 김에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성은 빼고 이름 두자만 간단히 넣어서 “이제부터 ○○쌤이라 부를게요. ○○쌤! 우리한테 프랑스어 가르쳐 주세요!” 하였다. 이렇게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는 근처에 느긋하게 앉아 쉬거나 서서 놀던 아이들마저 ‘우르르~’ 우리가 앉아있는 요사채 툇마루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하여 아무도 예정한 바 없으나 모두가 즉흥적으로 흔쾌히 즐겼던 우리들만의 ‘툇마루 프랑스어 수업 시간’이 시작되었다. 비정규 대안학교에서의 ‘비정규 프랑스어 수업’은 보통 그 시각 즈음에 서로가 다 시간이 맞으면 바로 그 장소에서 내가 실상사를 떠날 때까지 몇 번 더 있었다.
수업 시간은 고작 몇 십 분!
나는 아이들에게 프랑스어 인사, ‘맛있다’ 등등 몇 가지 아이들이 알고 싶어 하는 단어들을 가르쳐 주었다. 칠판이 없으니, 단어는 써주지 않고 그냥 발음 연습만 계속 시켰는데, 어렵다면서도 아이들은 프랑스어 단어 발음 해보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다 보니, 생전 처음으로 프랑스어를 발음해보는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한, 두 녀석의 발음이 썩 좋아 나 자신 놀라며 칭찬해주기도 하였다.
첫 수업 후에는 학생들이 멀리서라도 나를 발견하게 되면 “○○쌤! 봉쥬르!”하고 기운차게 외쳤다. “봉쥬르!” 뿐만 아니라, “맛있다” 등등 배운 단어들을 다 줄줄이 외워댔다. 자신들이 배우고 있는 외국어 외에 말로만 듣던 신기한 외국어를 직접 발음하는 즐거움과 자부심이 그들의 얼굴에, 목소리에 다 배어있었다.
나를 무슨 무슨 쌤이라고 불러준 것은 녀석들이 처음이었는데, 나는 내가 일생 들은 호칭 중 그 호칭이 제일 듣기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티 없이 어린 남녀 중학생들 못지않게 나도 그 즉흥 야외 수업을 즐겼다.
그렇게 실상사 체류 보름 정도가 지난 시점에는 <작은 학교>와 실상사에 조금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바로 산내면사무소에서 있었던 음악회!
이 음악회에는 시낭송, 가야금 산조 등 <작은 학교> 학생들의 공연뿐 아니라, 작은 마을마다 떠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악단인 듯한 음악 밴드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즐거운 노래와 연주가 있었다. 그날 저녁 시골 면사무소에서의 흥겨운 공연을 빛내준 청중들을 꼽자면,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안부를 주고받으며 친구처럼 지내는 실상사 스님들, 작은 학교 식구들, 실상사와 <작은 학교> 자원 봉사자들 몇 명 그리고 당연히 산내면 주민들이 있었다. 지리산 봉우리들 아래서 산처럼 고요히 살아가던 산내면 전체가 모처럼 잠에서 화들짝 깨어난 듯 활기 넘치던 저녁이었다.
그렇게 날이 흐르다 실상사를 떠나기 하루 전쯤 아침이었다.
아침 공양을 한 나는 여느 날처럼 포행을 하려고 실상사 천왕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 앞에서 실상사 쪽으로 들어오던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불과 1~2주 만에 바짝 추워진 새벽 공기에서 몸을 보호하느라 양쪽 다 점퍼 또는 파카에 달린 모자를 썼기에 나는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누구세요?”라는 나의 물음에 상대방이 모자를 벗었다.
종무소 직원 역할도 겸하고 있던 오십 대 초반의 <작은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몇 년 전 뜻한 바 있어 지인들과 지리산 아래 이곳에 <작은 학교>를 개교한 분... 평소에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그냥 귀농학교 농부 차림이었고, 분필 가루 보다는 흙 내음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한 그런 소탈한 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 분을 절 안팎 여기저기서 종종 뵈었고, <작은 학교>에 대한 얘기 등 함께 이런저런 대화도 좀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리산 마을을 뜨기 전에 그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다.
하여, 그날 아침 우연히 마주친 김에 나는 교장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십니다.
멋집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은 새벽 추위에 볼은 발개졌어도 덤덤한 어조로 이렇게 답하셨다.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그 대답에는 지리산 공기를 숨 쉬며 사는 사람의 작은 행복이 묻어 있었다.
...........
뜻하지 않게 대안 학교 이웃이 되어, 곁에서 그 학교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하며 나의 대안 학교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여기 와서 현장을 직접 보기 전까지의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대안 학교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그냥 선입견일 뿐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일반 학교 학생들과는 좀 다른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이 그곳이었다. 구체적으로, 일반 학교의 교과 과정에 만족할 수 없는 학생들, 일반 정규 학교 학생들과는 좀 틀이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특정 분야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학교에서는 자기 실력을 제대로 닦아갈 수 없는 학생들까지 모인 곳... 아마도 그런 학생들을 위한 배움터가 <작은 학교>이지 싶었다.
실은 <작은 학교>가 이렇듯 내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중, 고등학교 학생일 때 다른 무엇보다도 공부가 제일 어려웠기 때문이다. 학생 생활 중 공부 빼고는 거의 다 재미있었던 나는 다만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 교실에서 가르치는 밋밋하고도 천편일률적인 암기식 공부는 너무도 재미없어 적응할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 또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못 느끼는 것, 그것은 어쩌면 학생의 학습 능력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무엇에 기인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에서 거의 무한대라 할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학교는 지식을 얻는 곳이 아닌, 얻은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는 장이 되면 어떨까?
다만, 학교에서 누구나 꼭 배워야 할 필수 과목이 있다. 한국어 쓰기와 말하기 그리고 바른 생활과 예절... 너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정말 꼭 필요한 교육이 아닌가 싶은 그것!
교육에서의 현실과 이상...
그 거리를 좁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떠나오던 날 아침...
새벽 예불이 끝난 뒤 간단히 아침 공양을 한 나는 배낭을 메고 공양간의 입석 보살님께만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한 후, 지체 없이 실상사를 나섰다. 가람 앞의 해탈교에 서니, 주변의 지리산 봉우리들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그 광경에 홀렸던가? 나는 이도저도 다 잊은 채 잠시 넋을 잃고 거기 서있었다...
지난 세 이래 동안 정말 말 그대로의 먼 시골 절 생활을 하였다.
아침 혹은 오후에 산책할 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서보면, 어머니 산인 거대한 지리산 자락 거기서 오래 전부터 살던 이들의 무덤덤하고 순박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기는, 그렇게 덤덤한 얼굴에 담백한 성품을 가진 이는 실상사 공양간에도 있었다.
근처 입석리에 살다 오셔서 입석 보살님이라 불린다던 일흔 이쪽저쪽의 공양주 보살님이 그랬다. 나이가 드셨는데도 여전히 음식 솜씨가 솔찬히 좋은 그분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커다란 번철에 (듣도 보도 못한) 국수 찌짐 또는 과장 조금 보태어 지리산 반만 한 파래 찌짐 그리고 미나리 찌짐, 고추 찌짐, 호박 찌짐을 비롯, 깻잎 전, 고구마 전 등 온갖 찌짐 뽂던 일(‘전 부치다’의 지리산 사투리는 ‘찌짐 뽂다’), 시루떡에 넣을 늙은 호박 몇 개의 껍질을 벗겨 넙적넙적 썰던 일, 공양간 밖 장작 아궁이에 올려놓은 거대한 무쇠 가마솥에서 메주콩 삶느라 눈물, 콧물 흘리던 일, 콩을 다 삶고 난 아궁이 잔불에 일하는 젊은 처사님과 같이 고구마를 구워 여럿이 맛나게 나눠 먹던 일 등이 생각났다.
일이 고될 때는 마을을 산책하면서도 졸면서 걸은 적이 있지만, 동화 같은 삶을 살았던 날들이었다.
..........
그렇게 동화 속 나날 같았던 지리산 마을에서의 삶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나는 그 산을 떠났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지리산 자락 배움터를 노루처럼 뛰어 다니며 크던 아이들과 친구 먹고 놀던 일이 특히 나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작은 학교>의 친환경 화장실.
실상사 앞마당의 탑들과 나무들.
실상사 앞마당의 탑들과 지리산 봉우리.
<작은 학교> 앞 풍경.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그리고 그 뒤로 지리산 봉우리가 보인다.
실상사 앞의 해탈교, 그리고 지리산 봉우리들...
-수심修心
♠첫 번째 사진 설명:
<작은 학교> 전경을 찍었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컨테이너 건물 교사校舍 몇 동이 있고, 그 왼쪽에 이 층처럼 보이는 해우소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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