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까이의 매력 덩어리 숲길
-남한산성 둘레길-
여름이 다가오던 지난 6월 중순 남한산성 둘레길을 처음 찾았던 나는 좋은 의미에서 무척 많이 놀랐다. 전 세기 말까지만 해도 서울 근교 남쪽의 주말 유원지, 맛 집 집결지 정도로만 여겨졌던 그곳이 정말 매력적인 숲길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숲 산책길이 아니라, 동문, 서문, 남문, 북문 등을 잇는 소위 본성 성곽길 뿐 아니라 성곽 밖으로 이어지는 외성도 몇 군데 복원되어 있어, 아름다운 자연과 나라 수호의 탄탄한 역사가 어우러진 멋진 둘레길, 성곽길로 새로 태어나 있었기에 더욱 더 반갑고 즐거웠다.
남한산성은 무엇보다도 찾아가기 쉽고, 편안히 걸으면서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지하철 남한산성역이나, 산성역에 내려서 9번등의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남문 매표소에 내린다. 거기서부터 넉넉히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남문 혹은 북문 등에 다다르게 된다. 편안한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남문 혹은 북문에서 출발하여, 온갖 종류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있으면서도, 거의 평지나 다름없이 널찍한 포장도로 숲길을 걸으면 된다. 한편, 오르막, 내리막을 즐기는 산행인들이라면 성곽을 오른 쪽, 또는 왼쪽에 끼고 네 방향에 위치한 문을 한 바퀴 휘돌아 내려오는 성곽길을 걸어볼 일이다.
글머리에서 이미 언급했듯, 남한산성은 현장에 가기 전에는 미처 기대하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숨은 멋을 간직한 곳이다. 남한산성의 그 많은 멋 중 하나는 포장도로 숲길 안쪽 내리막길에도 무한히 많은 꾸불꾸불 숲길이 있고, 그 숲길에는 편안한 나무 탁자와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인조 때인 1626년의 축성 이후부터는 임금의 궐 밖 행차 시의 임시 거처 역할을 하는 한편, 유사시 임금을 모신 일행이 머무는 피난처이자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는 행궁 등의 문화 유적지도 있다.
따라서 포장된 숲길을 걷다가, 성 안쪽으로 난 어느 샛길 오솔길이 마음을 끌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또한, 언제라도 지쳐서 산을 내려가고 싶으면, 동문, 서문, 남문, 북문뿐만 아니라 거의 어느 지점에서든 종로 또는 남문 매표소라 불리는 곳으로, 이를테면 산성의 번화가이며 중심지이자 공식적인 산성 걷기의 출발점으로 걸어 내려오면 그만이다.
그런가 하면, 남한산성이 주는 또 다른 기분 좋은 놀라움은 숲의 질에서 온다.
다시 말해, 산성 안팎의 나무들이 수도권의 길가나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굵고 큰 것이다. 성곽길, 또는 포장도로 둘레길 여기저기 나무들에 달려있는 친절한 팻말들의 도움을 받아 남한산성에 식재된 나무들을 열거해보면, 보리수, 물푸레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대추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신갈나무, 물오리나무, 층층나무, 소나무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네 군데 문들 중 가장 크고 웅장한 남문 바깥쪽 아래에는 35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네 그루가 위용을 자랑하며 남한산성의 아름다움에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산성의 성곽미에 동양화적인 운치를 듬뿍 안겨주며, 산성 외관의 품위를 몇 단계 더 올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름드리 소나무들이다. 그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성곽을 도는 동안 자주 성곽 안팎에서 성곽길 등산객들의 시야를 시원하게 틔워줄 뿐 아니라, 아예 밀집해 소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도 여러 군데 있어서, 그림 붓을 제대로 놀릴 줄 아는 이들의 작품 의욕을 한껏 고취시킬 듯싶었다.
누구에게나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평지나 내리막길은 얼마든지 잘 걷는 내게도 오르막길 오르는 것은 힘에 많이 부친다. 그런데 남한산성 성곽길을 몇 번 걸어보니, 경사가 비교적 급한 동문 주위에는 길이 다른 구역에 비해 좀 덜 다듬어져 있거나 더러 허물어진 곳도 있어, 북문에서 동문을 거쳐 남문에 이르는 길이 제일 힘든 코스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축해둔 체력이 있어 몸 상태가 최상인 걷기 출발점에 북문을 출발, 동문, 남문, 서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북문에서 성곽길 산행을 끝맺는 것이 내게 제일 적합하다고 결론지었다.
남한산성 안내 지도를 참고하면, 이 코스는 5코스라 불리며, 전체 길이 7.7km, 소요 시간은 대략 3시간 20분 정도라고 나와 있다. 헌데, 나는 산에서는 걸음이 느린 편인데다가, 걷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는 풍경 사진도 찍고, 배고프면 먹을 것도 먹고, 이 코스 중 제일 좋은 쉼터인 장경사가 나오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절에 들러서 샘물도 한 바가지 마시는 등 즐겨 누리는 산행을 하기에, 종로에서 출발해 종로로 돌아 내려오는데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구름길 또는 하늘길...
성곽을 끼고 도는 길은 여정 내내 이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그만큼, 해발 500미터 급의 산이라고 하여 결코 얕볼 수 없는 곳이 이 곳이다. 왜냐하면 거의 어느 방향, 어느 지점에서나 성곽 저 아래 도시들(성남시, 하남시, 광주시 등) 또는 주위에 둘러선 수많은 산들의 모습을 파노라마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분 좋게도 성곽길은 대부분 흙길이다. 그리고, 오르막, 내리막에는 돌층계 또는 나무 층계가 편안하고 탄탄하게 발밑을 받쳐준다.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이런 보기 드문 구름길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남한산성 둘레길, 성곽길이다.
이렇게 시야가 확 트여있는데다가, 성곽 담만 그대로 따라가면 산행 중에 길을 잃을 염려도 전혀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주중 이른 시각에 성곽길에 올라가 보면, 이 구름길에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산행을 즐기며 자신 만의 오롯한 시간을 만들고 있는 20~30대의 젊은이들도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이 모처럼의 여유 시간을 눈 호강하며 호젓하게 즐기고 있는 중인 젊음이건, 혹은 직업적으로 매인 바 없어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젊음이건 간에, 그 휴식은 대단히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서울과 큰 도시들을 끼고 있는 이런 장소에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강점이면서 동시에 이 나라가 선진국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1인당 GNP로 따지는 산업 선진국 말고, 국민, 또는 시민들이 체감 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에서의 선진국...
간혹, 서울의 북한산, 북악산 등의 좋은 산이 먼 시골이 아니라 서울, 또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 남한산성과 그 둘레길, 성곽길도 비슷한 이유로 실제 모습보다 낮게 평가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가서 걸어보면, 남한산성 둘레길은 서울 가까이의 매력 덩어리 숲길이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삶에 지쳐 모든 것을 다 손에서 놓고 싶을 때 한 번 쯤 와볼만한 곳이다. 수령 70년에서 90년 되었다는 소나무들의 늠름한 기상과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가 새로운 힘을 북돋아 주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글을 마치기 전에 이렇게 좋은 둘레길, 성곽길을 보유하고 있는 남한산성에 그래도 몇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물이 많아서 식수가 마르지 않아, 유사시 천혜의 요새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는 남한산성에 막상 물 마실 샘이 거의 없다는 것. 깨끗한 마실 물이 여기저기서 퐁퐁 솟는 둘레길과 그렇지 않은 둘레길은 달라도 너무 다를 터... 예산에 맞춰 시일을 두고, 한 군데, 또 한 군데 샘터를 조성해 가면 좋을 것 같다.
둘째. 성곽길 전체가 다 산책길로 이어져 있는데, 단 한 곳 동문 주위에서는 차도를 한 번 지날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라면 할 수 없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예산을 조금 더 들여서 구름다리 형식으로든 무엇으로든 차도 위에 성곽길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방문객과 등산객의 입장에서 유념해야할 점인데, 휴일 방문객들의 무분별한 음주와 소음 등이 사라지면, 주말, 주중 가리지 않고 유쾌한 마음으로 찾고 싶은 둘레길로 남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8월 초, 느닷없이 검은 구름 몰려오며,
세찬 소나기 퍼부은 직후의 영춘정迎春亭에서 찍은 사진.
남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지점 중간쯤의 높은 지대에 있는데,
사진에 보다시피,
눈길 가는 곳마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역시 남문에서 서문 쪽으로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제 6 암문 暗門.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옆에 서 있는 표지석의 영문 설명에도 나왔듯 비밀 문이다.
전쟁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성에 드나들기 위해 만들었다는 작은 문.
몇 군데의 암문 중 외관이 제일 아름다운 암문 중 하나.
북문에서 동문 쪽으로 성곽을 끼고 내려가다가 보면
갑자기 평평하고 너른 지대가 나타나는데,
이곳에 자리한 절이 장경사이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라."
공양간인듯한 이 방의 문기둥 양 편에 쓰여 있는 글.
풍광이 수려한 나무 계단
미음자(ㅁ)의 오른 쪽, 아래 쪽 양변처럼 독특하게 휘어져 있는 성곽.
"구불구불함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성곽 담.
서문에서 북문 쪽으로 향하다 거의 끝 지점쯤에 있는
아름다운 성벽 담.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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