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 같은 동양화 속을 걷다
한강나루길(운길산 역-팔당역)
지난 주 초...
새벽 일찍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왕십리역에 도착, 용문 방향으로 가는 중앙선으로 갈아탔다.
그리고는, 열 몇 정거장을 지나 운길산 역에 내렸다.
원래는 북한강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허나, 역에서 나와서 걷고 싶게 닦아놓은 길을 따라서 한강을 왼 편에 끼고 전진하다보니 한강나루길이었다. 아마도 북한강길은 반대 방향으로 난 길이었지 싶다.
엎어 치나, 메치나...
경치 좋고 걷기 편한 곳에서 한 나절 걸을 수만 있다면, 길 이름이나 길 방향 따위에는 괘념치 않았다.
더구나, 경기도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몸이 되어 흐르는 곳이 한강나루길이며, 이 길은 조안면을 둥글게 휘돌아 안고 흐르는 한강 풍경이 꿈결에 본 동양화처럼 펼쳐지는 곳이었다.
평일 아침에 걷기 시작한 터라, 산책객, 자전거 타는 사람도 뜨문뜨문 보일 뿐, 아름다운 가을 풍광을 편안하게 즐기며 원 없이 걸은 날이었다.
실제로는 16km 남짓한 한강나루길을 다 걸었다.
헌데, 팔당역부터 한강 삼패 지역까지도 좋은 산책로이긴 하지만, 서울 한강 둔치에서 흔히 보는 그런 풍경들이라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이 글에서는 운길산역에서 시작하여 팔당역까지 이르는 약 9km 구간의 환상적이고 걷기 좋은 산책길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전철로는 겨우 두 역 사이, 한 정거장 거리지만, 내 두 눈은 주변 산들과 강이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파노라마를 만끽하였다.
길은 내내 편하였다.
콘크리트길이 아니라 흙길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마음 속 한 쪽에 있긴 하였으되, 길 안내판, 이정표 등이 예쁘고, 친절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 그냥 앞에 난 길을 따라가며 한강이 만들어내는 온갖 풍광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이 길에서는 지루할 틈도, 피곤할 틈도 없다.
우선, 잊을 만하면 쉼터가 나타나는데, 쉼터에는 나무 데크, 나무 의자, 햇볕 가림 막, 다산 정 약용의 짤막한 글을 적은 나무 글판 등이 다리를 쉬고 마음을 편히 가다듬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 서울과 춘천을 오가던 경춘선 기차 길의 폐철로도 몇 군데 원래 그대로 남겨 두어, 철로길 풍경까지 만끽할 수 있기에,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다.
그렇게 폐쇄된 역 중 능내역陵內驛의 역 건물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따라서, 도보 또는 자전거 산책객들은 잠깐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 시절의 역 풍경 속에 빠질 수도 있다. 역사 바깥벽에는 그 시절 주민들이 찍어둔 사진들을 친밀감 있게 붙여두었고, 건물 뒤로 돌아가 뒷문을 통하여 역사 안쪽에 들어서면, 매표소 유리 창구, 열차 객들이 앉아서 각자의 차 시간을 기다라던 긴 벤치, 그리고 그 앞에는 난로와 커다란 노랑 주전자까지 그대로 있다. 난로 위에서 끓인 뜨거운 보리차를 마시다보면, 기다리던 열차가 곧 역사로 들어설 것만 같은 그런 정겨운 풍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역 주변에는 산책객들이 간편히 먹을 수 있게 동네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간이음식점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게서 별로 멀지도 않은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잊게 해주는 것은 양수리 두물머리 조금 아래쪽인 그곳의 한강 풍경이었다.
오래 전, 가족들과 차를 타고 양수리 쪽으로 나와 빼어난 강변 풍광을 이따금 즐기고 가기는 하였었다.
허지만, 전철에서 내려 그렇게 안전하고, 한가롭게 동양화 같은 풍경 속을 거닐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자기 걸음 속도대로 걷기만 하면 되었다.
마음이 좀 급한 이는 빠르게, 여유만만한 산책객은 느긋하게...
그렇게 걸으면, 풍경은 각도를 바꾸며 줄곧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자전거 길 바로 아래 2차선 도로를 건너서 내려가면 강 바로 앞에서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헌데, 그렇게 서서 강변 풍경을 보면서도, 내 눈으로 이 풍경들을 보고 있는 것이 맞나, 이 풍경들이 실재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려한 경치였다.
그날 가보지는 않았지만, 근처에는 조선 시대 문인 겸 학자인 정 약용이 탄생한 다산茶山 유적지도 있었다.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빼어난 환경에서 태어난 다산이기에 그에게서 좋은 글들 그리고 좋은 발명품(수원 화성 축성 시에 쓰인 거중기擧重器)이 나왔겠구나 하는...
"낮은 담 너머로 백성들을 바라본 사람"- 부끄럽지만, 다산을 거의 모르는 나는 남양주시의 <다산 정 약용> 홈 페이지에서 다산을 한 마디로 정의한 이와 같은 문장을 보았다.
후세 사람들에게서 이런 따스한 칭송을 받는 어른을 둔 나라...
그런 나라는 행복한 나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길에는 이 명박 전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드셨다는 찐빵 집도 있었고, 80년대 초부터 운영되고 있어 나도 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카페 겸 음식점 <봉주르>도 토속 향취가 물씬 풍기는 방식으로 확장되어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봉주르>에는 시골 느낌의 건물 몇 채가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는데, 그 중에는 통나무 기둥에 초가지붕을 얹은 정갈한 건물들도 있었다.
내가 잠깐 구경하러 마당에 들어섰던 그 아침에는 모닥불 터에 모닥불을 피워 놓은 채, 젊은 직원들이 부지런히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강나루길을 걷다보면, 봉안터널도 지나게 되어 있다.
오가는 차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걸어 통과할 수 있는 터널이다.
한편, 길을 걷다 다른 풍경을 보고프면, 길 밖으로 빠져나와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가을이 농익어 가던 때라, 어느 마을이건 색색 단풍 든 나무들이 있어, 시야가 툭 트인 강변 마을들의 정취를 더해 주었다.
남양주 일대에는 산책길 또는 자전거길이 여러 방향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다산의 유적지도 있기에 그 길들 전체에 다산길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이 분류된 대로 하면, 한강나루길은 다산길 1코스이다.
헌데 조금 헷갈리는 점이 있다.
총 10여 개에 이르는 다산길 2코스에도 다산길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때문이다. 2코스에는 다산 유적지 길이든 다산 고향길이든 뭔가 세분화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팔당댐에 도착해서 보니, 자전거 길이 충주댐까지 이어져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져 보니, 국토 종주 자전거 길의 총 길이 만도 1,757km에 이른다고 한다. 헌데, 자전거 길에는 의례 도보 객들을 위한 산책길도 옆에 나란히 있다. 전국의 산 둘레를 빙 도는 둘레길도 점점 늘고 있고, 제주도의 올레길도 완성되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녹색길의 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두 발로 걸어서, 혹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전국의 풍광 좋은 곳을 안전하고 기분 좋게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앞으로 더 많고 좋은 도보 길들이 열려야 하겠지만...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자동차 매연 들여 마시며 어거지로 국토 종단 순례를 하던 시대는 차츰 아스라한 옛 추억이 되어갈 것 같다.
♠♠♠♠♠♠♠
'새들이 편히 깃든다'는 뜻이 담긴 지명인
남양주시의 조안면鳥安面 슬로 시티에서
느릿느릿한 하루를 즐긴 날이었다.
새들은 편히 깃들고...
물오리 떼들은 둥둥 물 위의 좋은 세상을 떠다니고...
사람은 느릿느릿 세상 근심 내려놓고 거닐고...
강가의 나무들은 꼬박꼬박 나른한 낮잠을 즐기고...
그런 날이었다.
고요한 마을 조안면에서 삶의 쉼표를 찍고 온 날이었다.
조안면 강변 풍경
그린 듯 조용하다.
조안면 강변
또 하나의 세계.
여기는 슬로 시티 조안!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맡기라는 유혹적인 글구에 이끌려 걷다.
"물빛 자전거" 모는 재미 아는 이들 중
그 누가 감히 이 문구의 이끌림에 빠져들지 않으리?...
쉼터 옆에는 꼭 이런 다산길 안내석이
쉼터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폐역인 능내역 전경.
역사 앞의 빨강 저고리, 초록 치마를 입은 그 시절 우체통...
그리고 근처 폐교에서 가져왔거나, 예전 역사에서 사용했을
나무 걸상들 쪼르르...
추억의 역 내음 폴폴 풍기다.
능내역 앞에 가져다 놓은 나무 걸상들...
그 다채로운 색깔들이 근처 나무들의 단풍 빛과 어울린다.
능내역 내부의 매표소 유리창.
오른 쪽에 붙인 그 시절 교통안전 캠페인 글귀에는
"앗차! 하면 늦는다.
지키자. 교통도덕"이라 쓰여 있다.
매표소 창구 맞은편에 놓여있는 길다란 벤치와
난로 위의 노랑 주전자...
소품이 갖춰진 연극 무대 세트 같기도 하다.
다산의 <물가에 가기>가 새겨진 나무 글판.
"물이 절로 흐르며
콸콸 막힘이 없네.
아마도 천지가 생겨날 때에
산이 무너져 그리 됐겠지."
라고 노래한 다산.
한강나루길.
도보 길, 자전거 길, 길가의 나무들 그리고 먼 산.
한강나루길.
저 앞에 태양열 주택이 보인다.
길바닥의 인도 표지 그림.
한강나루길 근처에 떨어진 은행잎들.
나무 둥치 근처에 우수수 떨어진 은행잎들.
한강나루길에 의도적으로 철거하지 않은
예전 기찻길의 풍치.
나무 벤치 두 개, 단풍 든 나무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
벤치에 척~ 앉으면,
시인이 아니어도 가을을 노래하는 시가 나올 듯...
한강나루길 옆에 단풍 든 나무들.
한강나루길 옆의 카페 <봉주르>.
오전에 도착하니,
마당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있었다.
<봉주르>의 건물 중 하나인 초가지붕 카페.
한강나루길 아래 강변 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다.
강변 정자를 통해 본 한강의 평화로운 풍경.
한강나루길 강변의 작은 마을.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하고,
서양의 인상파 그림 같기도 한
강변 풍경.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도는 팔당호 근처 풍경.
대한민국의 강변인가...
스위스의 어느 호반인가...
강물, 나무들, 그리고 그 곁의 꽃...
아시아인 듯, 유럽인 듯...
근경의 꽃도 정답을 주지 못하네...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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