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 누비고 다니기

남한강 길 걸으며 쟝 쟈끄 루쏘를 생각하다

수심修心 2013. 12. 30. 18:03

 

 

 

 

 

 

 

남한강 길 걸으며 

쟝 쟈끄 루쏘를 생각하다

 

 

 

 

 

 

     운길산 역 주변에는 동, 서, 남쪽으로 환상적인 자전거 길들이 펼쳐져 있다.

     이름 하여, 한강나루길, 남한강길, 북한강길, 다산길 등등...

     

     이달 초였다.

     그날은 운길산 역에서 남쪽으로 좀 내려온 지점인 전철 국수역에서 하차, 남한강길을 따라 양평역까지 걸어 내려갔다(전철 길로는 10.2km). 사실 물길로 따지면, 남한강 상류로 거슬러올라갔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솔직히 이 길은 글머리에서 언급한 운길산 역 주변의 화려한 풍경이나 팔당역 쪽으로 내려가는 한강나루길의 꿈같은 풍경에는 미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무시렁 무시렁 평범하다고도 볼 수 있는 마을 길, 강변 길 등이 이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대신한 편안함을 주는 길이었다고 할까? 

     남한강 자전거 길의 양평 구간은 나름의 매력을 소유한 길이었다.

 

 

     그런데, 어라?

     마을 여기저기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남한강 자전거 길을 걸으면서 뜬금없이 프랑스 작가 쟝 쟈끄 루쏘 Jean-Jacques ROUSSEAU 많이 생각났다. 오래 전 대학 3학년 때 우리는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그때 루쏘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물론이고 그 외의 시간에도 친한 친구와 함께 루쏘의 "고백록 Les confessions"과 "고독한 산보자의 몽상 Les 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 원어 본을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도 루쏘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적은 "고백록"에서 특히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다. 바로, 젊은 시절의 쟝 쟈끄가 프랑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걷기가 주는 즐거움, 프랑스 국토의 아름다움 등을  젊음 특유의 푸릇푸릇한 감성 그대로 되살려 세세하게 적어놓은 내용이다. 프랑스 사람은 아니지만, 프랑스어권 스위스인 제네바 출신이기에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덕택에 프랑스어 전공인 우리는 루쏘가 쓴 글 그대로를 음미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루쏘는 걷기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이다.

     약관 열여섯 살 때,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고향 제네바를 훌쩍 떠나 방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위대한 작가이며, 철학자이자 음악가였던 루쏘는 걸으면서 명상하고, 걸으면서 감미로운 몽상에 잠기고, 걸으면서 행복해하고, 걸으면서 (복잡하고 깊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내고, 걸으면서 자신과 화해하고, 걸으면서 숱한 작품의 영감을 얻은 사람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나는 어쩌면 학생 시절 루쏘를 읽던 때부터 루쏘의 감성으로 표현된 걷기의 매력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으로, 들로, 벌판으로, 시골로, 바닷가로 쏘다니며 느끼는 행복을 갈망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백록> 1부, 4권에서, 열여덟~ 열아홉 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가던 쟝 쟈끄는 스스로의 삶에서 제일 후회되는 것이 여행 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는 이어서...

     "혼자 걸어 다니던 때만큼 많이 사색하고, 많이 존재하고, 많이 살고, -감히 말하건대- 많이 나였던 적은 없었다.

      걷는 행위에는 나의 사고를 활발하고 생생하게 해주는 뭔가가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고 있을 때 나는 거의 사고를 하지 못한다.

      나의 영혼이 움직이려면 몸이 움직여줘야 한다. [...]"1)

     몇 줄 아래에서는 걸을 때 찾아와주는 생각(창조적 영감)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함과 동시에, 걷기 여행을 즐기던 당시 왜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지에 대해서도 밝힌다.

     "영감靈感은 스스로가 오고 싶을 때 온다.

      내가 원할 때 와주는 것이 아니다.

      영감은 아예 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떼거지로 몰려와서, 그 양과 힘으로 나를 짓누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하루에 열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다.

      헌데 그런 영감들을 옮겨 쓸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딘가에 도착할 때에는 머릿속에 저녁 먹을 생각 밖에 없고...

      어딘가로 떠날 때에는 잘 걸어야지 하는 생각 밖에 없는데... 

      어딘가로 떠날 때에는 저 문만 나서면 새로운 천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천국을 찾으러 갈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2)

     위에 인용한 구절은 루쏘가 산책의 즐거움, 걷기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 여러 책에서 묘사했던 수많은 글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깜깜한 새벽부터 서둘렀기에, 중앙선 전철 국수역에 내렸을 때는 아침 8시가 아직 되지 아니하였다. 

     나는 동네 사이로 난 자전거 길을 따라 걸었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한 마을길이었는데, 핑계 김에 평범한 시골 마을의 속살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걷다가 원복터널을 지났다. 그리고는 바닥이 나무로 된 복포 철교를 지나 근처의 자그맣고 예쁜 전원주택 촌도 감상하였다. 그리고는 길이 569m나 되는 기나긴 기곡 터널도 거뜬히 통과하였다. 저번에 남한강 자전거 길 초입을 걸을 때(운길산 역에서부터 남하하는 구역) 하도 터널을 많이 지나서, 이미 터널에는 이력이 난 터였기에...

 

     문득, 아신역을 향해 가던 길에서 갈림길이 나오더니, 옥천 볼랫길과 아신역 양 방향을 알려주는 깔끔하고 정겨운 이정표가 나왔다. 글씨체, 색깔, 나무 판의 모양 그리고 서리 내려앉은 주변 풀들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그 근처 마을 분위기에 독특한 예술성을 부여해 주었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걷는 그날의 일정이 아니었다면, 그냥 다 버리고 옥천 볼랫길로 들어서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 정도로 걸작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다시... 한국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 이정표 앞에 서서, 수 세기 전 프랑스 동부 시골 곳곳을 두 발로 누볐던 루쏘가 생각났다. 빛나게 한국적인 것이 속속들이 프랑스적인 것과 맥을 같이 해서였을지?...

        

     아신역을 지나서 걷다 보니, 양근섬이라는 곳에 당도하였다.

     작지만 조용하고 편한 섬이었다. 섬 건너편에 전원주택 촌인지, 팬션촌인지 오밀조밀한 집들이 모여 있는 작고 예쁜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나서, 덩치가 커 한 컷에 담을 수 없었던 특이한 외관의 양평 군립 미술관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하늘색으로 칠해진 양근교가 위 쪽에 보였다. 양근교 비스듬한 아래 쪽으로 기분 좋은 나무 데크 다리가 놓여져 있기에, 나는 나무다리를 건넜다.

     나무다리를 건너 양근교 아래 서서 높은 천정을 올려다보니, 푸른빛을 발하는 인상적인 모습의 샹들리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2011년에 제작된 이 상진의 '바람을 보다'라는 작품이었다. 풍력 발전을 이용하여 전기 없이 작동하는 조명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밤에 불 켜져 빛나는 샹들리에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였다.  

    

     예술 작품이 적재적소에서 활용되고 있는 양근교를 벗어나니, 기나 긴 양근대교가 시원하게 바라보이는 지점의 강변에 널찍한 잔디 공간이 있었다. 그 지역은 육이오 전쟁 때 무고한 양민 육백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라는데, 장소의 역사를 알려주는 작품 두 점이 세워져 있었다.

     그 하나는 '평화'라는 제목을 단 김 태곤의 콘크리트 작품이다. 여러 개의 둥그런 콘크리트 구는 영어 점자로 'Peace'를 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은 '통곡의 그날'이라는 제목의 시를 돌에 새겨 넣은 시비詩碑였다. 툭 트인 강변 전망이 아름다운 그곳이 비극적인 역사의 장소였음을 알게 되며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걷지 않았지만, 시간은 꽤 흘러 있었다.

     하여, 걷기를 마무리하려 그곳에서 몇 걸음 걸어 올라가니 양평군청이 나타났다.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양평역은 군청 조금 뒤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루쏘에 대한 회상 속에 마을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시작되었던 그날의 걷기는 육이오 전쟁의 뼈저린 흔적을 눈앞에 보며 마무리되었다.

     남한강의 그 길은 생각하기 좋은 길,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길이었다.   

 

 

 

 

 

 

복포 철교

 

 

 

 

 

 

걷는 길 주변의 자그마한 전원주택 촌.

 

 

 

 

 

 

자전거길 옆 둔덕의 텃밭으로 올라가는 나무 층계.

주변의 헌 나무 조각들을 대충 얼기설기 이어 붙여 만들어놓은

임시 층계인 듯하면서도,

왠지 묘한 예술성이 풍긴다.   

 

 

 

 

 

 

 

옛 철도길 쉼터.

글씨, 도안 등을 깎아 새겨 색칠한 솜씨가 돋보이는 

어여쁜 나무 알림판.

 

 

 

 

 

 

자전거 길 옆의 식당으로 내려가는 나무 층계와 그 주변 모습.

흡사 설치 미술을 보는 듯하다.

 

 

 

 

 

 

양근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이는 먼 데 풍광.

 

 

 

 

 

 

양평 군립 미술관 앞마당에 설치된 전 신덕의 작품.

'각인된 시간'.  2010년 작.

'

 

 

 

 

 

양근교 아래의 샹들리에.

이 상진의 '바람을 보다'.

 

 

 

 

 

 

양근교 곁의 나무 데크 다리와 뒤 쪽의 양근대교.

주변에 다리가 몇 개씩 놓여 있는 그곳... 

보는 각도에 따라 묘한 아름다움이 연출되었다.

한국사에 무겁게 각인된 장소의 역사성까지 감안하면,

이곳에서는 잠시 머물러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를 느끼게 된다.

 

 

 

 

 

 

양평 양근대교가 바라보이는 곳에 설치된

육이오 전쟁 양민 학살 현장 비.

 

 

 

 

 

 

양평군청 입구 바닥 타일에 새겨진 양평군 로고.

레포츠 천국을 지향하는 남한강변 도시인

양평의 맑은 이미지에 잘 맞는 로고인 듯하다.

 

 

 

 

-수심修心-

 

 

 

 

♣각주

1)1972년, 빠리 뽀슈 판(Le livre de poche). 247~248쪽 인용.

2)상동. 249쪽 인용.

  시각적으로 읽기 수월하도록, 인용 글들을 임의대로 줄 바꾸기 하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