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로 거듭나기

해인 범종 앞에서 보낸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수심修心 2013. 4. 10. 17:41

 

 

 

  해인 범종 앞에서 보낸 잊을 수 없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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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해인사

                                                                                         

   

     어찌 일인지 이만큼 살아오도록 유명한 해인사엘 번도 가보지 못했다.

      생각하기를언젠가 시간을 내서 다녀오리라…’ 였을 .

     그러다 겨울에 갑자기 해인사에 가서 며칠 있다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계절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내가 추운 계절에 거길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부터 신기했다.


      20032월.

     뭉쳐 있고, 막혀 있는 모든 것을 풀어 버리고 나서, 시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때가 마침 음력 정초.

     정초 산림 기도와 입춘 기도가 겹쳐 있었다.

     그래서 떠났다, 합천의 가야산으로...

 

 

      도착하자, 다행히 원주 스님께서 넓디넓은 방에서 대중과 함께 며칠 묵어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셨다.

     정말 고맙고 기뻤다.

     여행이야 여기 저기 해보았지만, 절에서 묵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든 것이 좋았다.

     깨끗하고, 바르고, 절도 있는 삶의 표본. ‘가야산 호랑이성철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절의 가풍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신 데다가, 학인1) 스님들이 많이 계신 덕택이었으리라. 마치 무슨 사관학교 쯤에 있는 싶었다. 젊은 스님들의 가짐, 말씨, 표정, 모든 것에 서릿발 같으면서도, 올곧은 기상과 기품이 서려 있었다. 공양간 안의 갖가지 소임을 맡으신 스님들은 스스로가 수도자이면서, 동시에 절에 불자들을 바르고도 효과적으로 돕는 모범적 길잡이셨다.

     특히 공양간 안에서 차수를 하고 서서 대중들이 식사 질서를 지키게 돕는 동시에, 많은 대중들이 불편 없이 식사를 마칠 있도록 조용히 그러나 효율적으로 움직이시는 담당 스님들은 인상적이었다.

 

 

     공양간에서 일반 불자들도 묵언해야 하는 줄은 와서 처음 알았다.

     묵언을 지키며, 음식을 남김없이 먹었다. 그러면서 생각하였다.

      ‘이렇게 먹으니까 씹는 집중할 있다.

      내게 음식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없는 중생의 수고로움으로 음식을 먹었으니...

      나는 어떤 방식으로 모든 고마움을 회향할 것인가?’

    

     또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해인사의 이런 가풍을 속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배우고 따라 있다면, 거대한 기계의 부품처럼 살고 있는 대도시 사람들을 엄청나게 바꿀 있을 것이다. 인간, 인간이 모든 중생의 따뜻한 섬김을 받으며 살고 있고, 섬김을 받은 만큼 우리 하나 하나는 당당히 인간답게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있을 테니까.'

     건너에서 바라본 스님들의 삶은 각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매섭게 지니면서도, 스스로를 낮춘 상대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자세가 철저하게 몸에 배어 있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삶이었다.

    

 

     '해인사 스님들의 작은 미술관'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과 구경루에 전시되어 있는 원정 스님의 뛰어난 조각 작품들, 장경각의 고고하고 아름다운 모양새와 안에서 믿을 없는 세월들을 당당히 증명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 팔만대장경 판본들, 때와 대적광전 앞에 서면 바라보이는 우뚝우뚝한 산들...

 

 

     4 5일의 체류 기간 동안 번도 거르지 않았던 예불 시간.

    특히 새벽 3 되기 전에 일어나, 3 거행되던 새벽 예불 시간은 압권이었다.

    새벽 예불은 여 명의 스님들이 참석하신 가운데, 2시간도 넘게 계속되었다. 나는 중에서도 석가모니불 정근 시간이 제일 좋았다. 목탁 소리에 맞춰 "석가모니불" 다섯 자만 40 동안 부르는데, 2년이 초심 불자인 내게는 첫째 쉬워서 좋았고, 둘째 소리를 크게 내어 염불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좋았다.

     단순한 염불인 같지만, 스님들의 염불 소리는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꺾어지면서 올라가다가, 어쩔 없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그러다가는 다시 조금씩 딛고 올라간다. 머물다가, 수그러들고, 이내 잦아지는가 하면, 잦아진 목소리를 부둥켜안고 다시 살려 내어, 오르고 오르고

      무덤덤하게만 보이는 다섯 자의 염불 안에서는 무수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

       

 

      그런가 하면, 해인 총림2) 구조 또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늘까지 뻗친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도입 공간의 만도 개를 지나야 하고, 이후 수행 공간, 예불 공간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점점 높은 곳으로 오르게 설계되어, 정점에 장경각이 여법하게 모셔 있다.

     게다가 1200 전에 지어 절이어서 그런지, 각각의 계단이 일반 절의 계단보다 훨씬 가파르다.

     실제의 경사도는 없으되, 체감 경사도는 70도에 가깝다.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정신을 곳에 없다. 고작 10 내외의층계를 거의 다 오를 , 또는 반대로 내려올 쯤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장경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가파르다.

     약간 과장하여 벽을 타고 오르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곳은 해발 900미터가 넘는 높은 중! 사시사철 , 오고, 바람 부는 날도 허다할 것이니,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단순한 일도 수행처럼 하라는 설계자와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싶었다.

        

 

     뭐니 뭐니 해도 해인사에서 가장 좋았던 , 가장 머무르고 싶었던 , 내내 가슴에 담아 두고 싶었던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해인 범종루!

 

     도착 다음 새벽에 예불을 보기 위하여 방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은은하나 장중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소리가 나고 있는 곳을 따라가 보니, 해인 범종루였다.

     젊은 스님들이 '해인 범종'이라고 쓰인 곳에서 교대로 법고, 범종, 목어3), 운판을 두드리셨다. 기본적으로는 분이 일을 맡으시는데, 때로 스님 분이 오셔서 법고 두드리는 일에 참여하시, 범종루에서의 모든 의식이 끝나면, 또 다른 스님  분이 나타나셔서, 손에 받쳐 든 작은 종을 울리셨다. 그러니까 때에 따라 내지는 다섯 분의 스님들이 종두鐘頭라는 소임을 맡고 계셨다.


     종두 스님들이 법고를 두들기는 모습은 참으로 힘 있고, 기개가 넘쳤다.

     종고루 의식을 처음 시작할 때 몸짓도 작고, 북채가 움직이는 범위도 좁아, 소리가 크지 않다. 이것은 한밤중에 잠들어 있는 모든 유정, 무정의 생물들을 놀래 키지 않고, 부드럽게 깨우기 위한 같았다. 그러나 이윽고 스님의 놀림, 놀림이 커지면서, 사람보다 훨씬 육중한 몸집을 지닌 법고의 곳곳에서 북채가 놀게 된다. 북채와 북과 스님 , 그리고 무한정 세상의 무한정 마음이 곳에서 신명 나게 춤을 춘다.

 

     그러다가, 북을 치던 스님이 쪽으로 물러나면, 다른 스님이 가운데로 들어오시며 어느 순간은 분이 북을 치신다.

     이윽고 물러나야 스님은 물러나시고 새로 앞에 자리 잡은 스님 혼자서 외로이, 그러나 당당하게 북과 세상을 함께 깨우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북의 반대편에3스님 분이 북채를 들고 자리를 잡으신다. 다시 말해, 북의 , 뒤에서 스님 분이 커다란 하나를 동시에 스테레오로 치신다. 따라서 북 소리는 더욱 장엄하고 힘 있게, 정렬해 있는 앞산들을 비롯한 주위 모든 만물에 스며들게 된다.

 

     이윽고...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을 , 범종 앞에서 차수하고 기다리시던 스님이  마치를 잡으신다. 스님은 발작 뒤로 맵시 있게 물러났다가, 다시 그만큼 앞으로 힘 있게 발을 내디디며 범종을 때리신다. "댕그렁~". 범종이 울린다. ~~~ 

     사방이 깜깜한 새벽 예불 전의 종송鐘頌 시간에 나는 꽁꽁 땅바닥을 딛고 서서, 쌩쌩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에 낮게 깔린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별들마저 깨어나 더욱 반짝이는 것 같았.

     

       마지막으로, 목어와 운판이 두들겨 졌다.

     내게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종두 스님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스님들의 대기 자세는 기본적으로 몸을 반듯이 세운 차수의 자세. 그러나 종종 스님들은 자기 연주 차례를 기다리시며, 북채를 허공에 두들기셨다. 법고를 두들길 정확하게 두들기려고 연습하시는 같기도 하고, 공기에 팔을 염려하여 준비 운동을 하시는 같기도 하였다. 어쩌면 다였을 지도 모르고...

     여하간 스님들의 그런 자세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럴 때에는 그저 차수를 하고 계시겠거니 짐작하였었기에, 종두 스님들이 그렇게 허공에 북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맡은 소임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완벽하게 이행하려는 수행자의 열띤 모습을 목격한 같았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스님들은 의식이 시작될 옮겨 놓았던 나지막한 이동식 나무 울타리를 다시 범종루 입구의 자리에 옮겨 놓으시곤, 줄을 지어 계단을 올라, 새벽 예불이 시작되고 있는 법당 안으로 사라지셨다.

 

      20 정도에 걸쳐 진행되는 타종, 타고 의식은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1600년에 걸친 우리 불교의 유구한 역사가 남겨 놓은 고고하고, 아름다운 보물 같은 무형 자산이었다.

   때로는 나라와 백성들에게서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천대 받으며 억압되기도 나라 불교가 후대에 고스란히 남겨 놓은 우리의 밑바탕 예술이었다.

   또한, 사시사철 아름답게 옷을 갈아입는 가야산의 자연과 어울려 치의 오차 없이 매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그림 같은 야외 예술이었다.

    

 

    그대로가 완벽한 세계이며, 완벽한 삶인 해인사를 벗어나도 가야산이 안겨 주는 감동은 그대로 계속된다.

  해인사 인근에, 마치 나무에 가지 지듯 길 좌우로 들어 있는 10 정도의 암자가 그것이다.

  해인사를 짓기 위해 일종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맡기려고 지었다는 원당암. 그곳에는 혜암 스님의 사리가 모셔 있는 미소굴도 있었다.

   게다가, 성철 스님이 주석하셨던 높은 곳의 백련암.

   그림 같이 포개어 개의 사이로 깊숙이 파인 계곡의 경치를 마치 아름 선물처럼 가슴 가득 안고 있는 절경의 금강굴과 보현암 ...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한적한 길을 오르다 보면, 암자 하나!

  왼쪽으로 꼬불꼬불 적적한 산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암자 하나!

  이렇게 사과나무에 사과 열리듯!

  나무에 열리듯!

  가야산 자락에는 불국토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해인 범종이

    새벽을 열어 주기에

      오늘 하루도 반듯한 인간으로

    있을 것이다.

 

     해인 범종이

     하루를 닫아 주기에

      오늘 밤도 번뇌를 여읜 깊은 속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수심 修心

 

 

 

 

 ♣각주: 

 1)학인學人: 글자 그대로, 공부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의 뜻으로, 사찰의 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지칭함.

 2)강원, 율원, 선원 등을 갖춘 절을 총림叢林이라 한다.

    나무들이 많이 모여 숲을 이루듯, 수많은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곳이라는 뜻.

 3)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은 것이고, 운판雲版은 청동을 구름 모양으로 주조한 것으로, 범종, 법고와 함께 범종루 (혹은 법고루)에 달아놓고, 아침, 저녁 두 번 예불 직전에 소임 맡은 스님들이 치신다.

  이 네 가지를 합쳐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진 제목:

  <동지나해로 울려 퍼지는 서귀포 약천사 법고각法鼓閣 북소리> 

 

사진 설명:

  20052월, 제주도 서귀포 약천사에서 9일 동안 머물 때 찍어 놓은 사진.

  단일 법당으로는 동양 최대라는 대적광전을 나와, 눈앞에 펼쳐 진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

  저 앞 왼 편에 범종각, 저 앞 오른 편에 법고각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쌍둥이 매 한 가지로 우뚝 서 있다.

 

  새벽 예불, 아침 공양 후에는 절에서 나와 제주의 곳곳을 걸어 다녔다.

  제주를 떠나 우도까지 가서 걷기도 했다.

  제주 올레가 생기기 이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해인사 방문 시에는 오로지, 모든 것에서 쉬고 싶었기에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었다.

 

  하기는...

  장소가 상관이랴?

  악기가 대수일까?

  산 위의 범종도, 바닷가 법고도, 미몽 속을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깨워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무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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