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 소멸의 길
위 사진은 오대산 적멸보궁에 오르기 직전, 마지막 나무 층계에 눈 쌓인 장면이다.
저 층계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 오른 쪽으로 돌아 서면, 바로 눈앞에 단아한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2009년 초, 오대산 중대에서 일주일 간 머물며 기도하던 때 찍은 것이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적멸보궁에는 법당만 있을 뿐, 요사채가 없다.
따라서, 기도객들은 하루 최소 4번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이 산길을 최소 4번 왕복해야 한다.
보통 걸음으로 쉬엄쉬엄 걸어, 왕복 40~50분 정도 걸리는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 사이의 이 산길을...
그런데 특히, 새벽 3시 반부터 2시간 동안 이어지는 새벽 예불을 보러 올라 갈 때가 문제다.
그러려면, 2시 조금 넘어 일어나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는, 용기를 내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오로지 회중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이 길을 오른다.
밤사이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있는 돌부리에 자칫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기라도 할라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런 길을 오른다.
여기에 박자 장단 맞춰 주려고, 을씨년스런 겨울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버리면...
미처 우비 준비 못한 사람은 한 손에 회중전등, 남은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묵묵히 걸어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신성한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 뿐...
잠시 후면 맛보게 될 그 기쁨이, 그 즐거움이, 그 행복이, 그 희망이...
이들에게서 두려움을 지워 버렸다.
길 표지판에서 미리 주의 시켜주듯, 느닷없이 곰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도, 부상에의 두려움도,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야간 산행의 막연한 불안감도 모두 다...
누구라도 쉽사리 짐작하겠지만, 이들은 등반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노보살님들이라 할지라도, 동반자나 좀 더 젊은 다른 기도객의 손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오르신다.
그렇다 칩시다.
다 알아들었다 칩시다.
그렇다 해도 대체,
그들의 그토록 간절한 염원은 무엇이오?
어렵지 않다.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내놓을 수 있다.
가족 건강, 가내 평안, 손자 대학 합격, 가장의 사업 번창, 스스로의 하심下心...
또는 일체 중생의 업장 소멸...
그런데 몇 년 전...
이 기도 순례 길 전체에 반듯한 돌들이 깔리고, 밤길 밝혀 주는 가로등들도 설치되었다 한다.
무엇보다 먼저, 기도객들의 안전을 위해서였으리라 짐작해본다...
이때가 나에게는 적멸보궁에서의 두 번째 체류였다.
칠 일 기도 동안, 나는 이 길을 내 업장 소멸의 길이라 생각하고 오르내렸었다.
수 억 겁 동안 온갖 존재의 형태로 살며 쌓아 왔을 나의 업장...
하여, 두터울 수밖에 없을 나의 업장을 녹이는 길...
내 업장 소멸의 길...
업장 소멸의 길...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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