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 간의 수행
-맑은 추억들을 안고 조계산 그곳에서 내려오다-
-조계산 송광사
(2014년 9월 초~
이듬해 1월 말까지 체류)
애초에 일주일을 예정했었다.
그랬던 것이...
그만 백일도 넘어서고, 동안거 반 결제1)도 넘어선 뒤에야 하산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다섯 달 간을 조계산 송광사 그곳에서 기도하고, 울력하였다.
맑은 날들이었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깜깜한 새벽 2시 40분경에 일어나,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며 법당으로 향하는 날들이었다.
흐린 날을 빼고는 꼭 북두칠성,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요사채에서 대웅전으로 향하였다. 그냥 얼굴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뒤로 꺾고 오로지 하늘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허기야, 대웅전 앞마당은 워낙 평평하여, 깜깜한 밤중에도 꼭 발밑을 확인하며 걸을 필요가 없는 곳이긴 했어도.. 나는 아무 걸림 없이, 넘어지거나 말거나, 스텝이 꼬이거나 말거나, 그냥 하늘만을 보며 걸었다.
그만큼이나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 목말랐었고...
그만큼이나 별이 촘촘히 박힌 그 하늘을 내 가슴 속에 새겨 넣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백 오십일을 지내기는 하였지만, 하루 하루가 소중하였다.
순간 순간이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던 그 길에는 도량석을 도는 강원 학인 스님의 힘차고, 청량한 목탁 소리가 함께하였다. 이 도량석은 매일 매일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다른 스님이 돈 것 같다.
헌데, 공양간에서 매일 하루 세끼 찬상 차리는 울력을 했던 나는 적지 않은 기간을 그곳에서 그렇게 지낸 덕에 총 합쳐 봐야 30여 명 남짓하던 강원 스님들 중 많은 스님과 같이 울력하는 복을 누렸다.
그래서, 새벽에 요사채 방에서 도량석 도는 소리만 들어도 거의 누구 목소리인지를 알 수 있었고, 그 소리가 나는 지점에 따라 대충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즉, 강원 쪽에서 도량석 소리가 나면 3시 좀 지난 시점이고, 대웅전 쪽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면 3시 15분 가까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대웅전 쪽에서 도량석 소리가 나면 나는 서둘러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대웅전에서 15분에 시작되는 종송에 맞추어 108배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였기에...
그 애절하고 간절하고 맑은 종송 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면서 나는 나의 하루가 고요하게, 여법하게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원 없이 기도, 울력하였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스님들, 행자님들, 도반들... 그리고 외국에서 온 수행자들, 프랑스 말을 하는 관광객들...
기도객, 참배객들이 수백 명씩 올 때는 그 준비와 상차림에 몸이 너무도 지칠 때가 있었고, 4개월을 넘어 5개월째가 되니, 비교적 건강체인 나이지만 쉬어도 쉬어도 몸이 잘 회복되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멋진 모험이었다.
10년 째 거의 매년 내려가 울력, 기도하는 그곳이어서 참으로 친숙한 곳이지만...
매번 똑같은 듯하면서도 전혀 똑같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곳이기에, 모험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름답고, 귀한 모험...
그 평범하지만 소중한 나날의 일들에 대해 앞으로 좀 더 쓰려한다.
-수심 修心
♣각주:
1)하안거夏安居는 음력 4월 보름~ 7월 보름까지, 동안거冬安居는 음력 10월 보름~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이며, 이 기간 동안 절에서 수행하는 대중들은 일주문 밖 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전념한다.
결제는 총 90일간 이러한 안거에 드는 것을 의미하고, 반 결제란 말 그대로 결제 기간의 반만 수행함을 이른다.
♣사진 설명:
송광사 우화각 부근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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