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은
송광사 라면 먹는 날!
-조계산 송광사
(2014년 9월 초~
이듬해 1월 말까지 체류 시)
송광사에서는 전통적으로 삼시 세끼 발우 공양을 하였다.
즉, 강원, 선원, 율원 스님들은 물론 소임 때문에 상 공양1)이 불가피한 몇 스님들을 제외한 모든 스님들이 강원 큰 방에 모여, 전통 예법에 맞춘 발우 공양을 하였던 것이다.
헌데, 언제부턴가 송광사에서도 저녁 공양은 발우 공양이 아닌 상 공양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요새는 오후 불식2)을 하는 스님들을 제외한 모든 스님들이 저녁에는 공양간에 오셔서 상 공양을 하신다. 공양간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상차림(간상)을 하는 이들에게는 일의 양과 절차가 훨씬 줄어들어, 비교적 마음 가볍게, 그리고 쉽사리 한 끼 울력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오랜 전통 그대로를 거의 고수하고 있는 송광사이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던가?
이번에 가보니 놀랍게도 저녁 상 공양 한 끼, 즉 목요일 저녁 한 끼는 라면, 다시 말해 채식 청정면을 먹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덕분에, 목요일 저녁에는 공양간의 공양주, 채공은 물론 2층의 간상조도 가뿐한 마음으로 한 끼를 준비한다.
목요일 저녁에 공양간 아래층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라면 봉지를 뜯어 커다란 솥에 라면을 끓이는 단순하고도 단순한 작업뿐이다(단무지를 고춧가루에 무치거나, 약 오른 청양 고추를 송송 써는 일쯤은 때에 따라서 어마무시한 양의 음식을 짧은 시간에 후다닥, 척척 만들어 내는 그들에게는 그냥 심심파적 거리?... 뭐, 그 정도일 뿐이고...).
한편, 위층 간상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 배추김치(이것은 갓김치나 총각김치로 대체할 수도 있다), 단무지 무침 정도의 기본 반찬 외에 (간혹 라면을 드시지 않고 밥을 드시는 스님과 불자들을 위해) 두 어 가지 반찬만을 더 내어놓으면 끝! 세간에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이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다면, 공양간에서 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이 목요일 저녁만 같아라!" 뭐, 이 비슷한 말이 슬로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농담!)
한 마디로, 공양간에서 라면 공양을 준비한다는 일 자체가 빡빡한 생활 속에서의 작은 일탈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탈 내지는 행복감은 목요일 저녁에 공양을 드시러 공양간에 오시는 스님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같다. 왜냐하면, 10대, 20대 젊은 학인 스님들을 필두로, 거의 모든 스님들의 얼굴에 그 같은 행복감이 번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승소면(僧笑麵: 국수가 상에 오른 것을 보면, 스님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는 뜻)"이라는 말도 있지만, 스님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나오는 잔치 국수나 칼국수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라면 드시는 것을 반기셨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과 꼬불꼬불한 라면을 맵네, 뜨겁네 하면서 후루룩, 후루룩 먹는 라면의 날!
남도 산사의 공양간에서 승속이 어울려, 저녁 공양으로 라면 한 그릇을 먹는 맛!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맛을 전해줄 방법은 없다.
애석하지만!...
단, 라면을 먹는 우리들의 환한 얼굴을 비유적으로 보여줄 방법은 있다.
가을 조계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던 저 행복한 단풍과 흡사하였다.
-수심修心
♣각주:
1)강원, 율원, 선원 스님들이 모두 모인 강원 큰 방에서 발우 공양하는 것과 달리, 불자 등 일반 대중들과 공양간에서 공양하는 것을 상 공양이라 한다.
2)그 옛날, 오전에 걸식하여 한 끼만 드시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받아, 정오 이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오후 불식不食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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