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로 거듭나기

배추밭엔 배추가, 무밭엔 무가 숙쑥 자라요!

수심修心 2015. 3. 4. 11:11

 

 

 

 

 

배추밭엔 배추가, 무밭엔 무가

쑥쑥 자라요!

 

 

 

 

 

-조계산 송광사

(20149월 초~

이듬해 1월 말까지 체류 시)

 

 

      아침 포행 시...

     나는 송광사 뒷산 언덕배기에 널찍하게 자리한 송광사 밭쪽으로도 가끔 걸어 올라갔다.

 

     작년 9월 초, 도착 다음 날 아침이었다.

     요사채에서 나와 공양간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해우소가 있다. 그 해우소를 왼쪽에 버려둔 채 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화엄전이 나오고, 화엄전을 지나 몇 걸음 더 걸으면, 밭에 다다르게 된다. 


     그날 아침 그곳에서는 매년 내가 내려갈 때마다 보기에 서로 낯이 익은 일꾼 처사님이 일하고 계셨다. 처사님은 검은 플라스틱 통에 조르르 담겨있는 배추 모종을 꺼내, 하나씩 정성스럽게 밭에 옮겨 심고 있는 중이었다. 얼굴이야 서로 익히 알지만, 성조차 제대로 모르는 '배추밭 처사님'은 나이도 좀 드신 데다, 말할 때 발음이 많이 어눌한 편이시다. 헌데, 산 속에서 하루 종일 오로지 밭 일 하며 흙만 만지는 분이라 그런지, 볼 때마다 거의 늘 아기같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이다.        

     배추 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광경을 생전 처음 보는 나는 신기하여 배추밭 처사님에게 이것저것 여쭈어 보았다. 이렇게 모종을 옮겨 심어 놓으면 언제 쯤 우람한 배추 포기로 커지는지, 심게 될 배추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처사님은 내 질문 마다 모두 성실히 답해주셨다.

     위에 든 이유 때문에 처사님 말을 잘 알아들으려면 귀를 쫑긋 기울여야 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내용은 다시 묻고 하여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줄 아는 일을 설명하는 동안, 배추밭 처사님의 햇볕에 그을린 주름진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환해보였다.

     주어진 일터에서 성실히,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날 아침 햇살도 유난히 밝게 비추어 주는 듯했다.    


     잠깐 동안의 기분 좋은 밭 대화를 마치고 위쪽으로 포행을 계속하기 위해 올라가면서 나는 배추밭 처사님에게 주머니 속에 있던 작은 과자 봉지를 하나를 건네 드렸다. 일하시다가 기운 떨어지면 드시라고... 에너지를 만만치 않게 소모시킬 밭일로 떨어진 기운을 회복시키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작은 과자 봉지였지만, 배추밭 처사님은 내게 고맙다고 말하며 또 한 번 순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 후...

     이따금 밭쪽으로 포행할 때면, 배추밭의 배추들과 배추밭 바로 위에 있는 무밭의 무들이 잘 자라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추밭  처사님을 비롯한 일꾼 처사님들의 정성을 알아주듯 배추와 무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났다. 그리고는 이윽고 11월 말 경 늦가을이 되자, 무와 배추들은 안으면 두 팔 한 가득 묵직하게 안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커져 있었다.   

 

     이렇게 알차게 잘 농사지은 배추와 무는 12월 중순이 좀 못 된 시점에 송광사 대중 모두가 밭에 올라가  수확하였다. 첨언하자면, 송광사 대중 울력 시간에는 팔순을 훌쩍 넘겨 기력이 많이 쇠하신 방장 스님과 회주 스님을 제외한 거의 모든 스님, 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총출동한다. 물론, 시간을 낼 수 있는 불자들 몇몇도 기꺼이 올라와 일손을 돕고... 


     ''배추 뽑기 울력''이라 이름 붙여진 이 대중 울력은 그날 점심 공양 직후에 시작되었다.

     간상 팀 행자님, 자원봉사자 몇몇과 점심 공양 뒷정리를 끝내고 좀 늦게 밭으로 올라간 나는 마치 영화 속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 작업의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간 그대로 서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선원, 율원, 강원 스님들은 물론 소임을 맡은 스님들과 어른 스님들 모두가 승복 대신 울력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셔서, 밭고랑을 따라 간격을 둔 채 나란히 길게 줄을 서서는 이미 밭에서 뽑아놓은 배추들을 이어 던지고 계셨다. 군데군데에 불자들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들까지 섞여 서서 일손을 덜고 있었고...


     나는 더 지체하지 않고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미 만들어진 대열 중 빈 곳에 서서 배추를 받아, 배추를 싣고 갈 차량이 서있는 밭 바깥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덩치 큰 배추지만 이어받아 던질만하다 싶었는데, 생각처럼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였다. 내 옆에 서서 한동안 내게 배추를 던져주시던 (아마도) 선원 스님이 웃는 얼굴로 나한테 "이게 한계이신 것 같네요." 하시더니 배추를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오셔서 내 팔에 그냥 안겨주고 가실 정도로... 여자들 사이의 팔씨름에서는 별로 밀리지 않을 정도로 팔 힘 하나는 자신있는 나이지만, 팔 힘으로 못 버텨주니 허리에까지 무리가 오는 데는 어쩔 도리 없었다...  

     어쨌거나, 대중 울력의 장점 중 하나는 아무리 고된 작업도, 아무리 엄청난 양의 울력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난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선한 공기 마시며, 시야에 거칠 것 하나 없이 툭 트인 야외에서 하는 작업이라 모두들 마치 잔치같이 즐거운 기분으로, 웃으며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힘든 대중 울력이 끝나면 빠질 수 없는 새참 시간...

     밭에서 일한 대중 대부분이 손에 또는 몸에 묻은 흙만 툭툭 털고서는 공양간에 모여 찐 고구마, 바나나, 흑임자 소를 넣은 모시 잎 떡, 쑥 찐빵 등을 공양간 아래층에서 직접 끓여주신 대추차와 함께 먹었다.

     채식을 하는 사찰 대중들에게 더 이상 화려한 간식이 있을까?  

 

     겨울을 대비한 김장 울력은 이틀 후쯤 시작해, 장장 사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송광사 밭에서 기르고, 송광사 대중이 힘을 합쳐 수확한 배추, 무가 주재료였다.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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