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서양 삼나무
-조계산 송광사
(2014년 9월 초~
이듬해 1월 말까지 체류 시)
초등학생 글짓기 제목 같은 제목을 달았다.
허긴 나의 글 중 더러는 내용마저 가끔씩 이렇게 초딩 글짓기인가 싶을 정도로 단순한 것들이 있다. 나 자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
마음에 담겨있던 것을 내려놓으면 그뿐!
위의 서양 삼나무는 고풍스럽고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송광사 일주문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우뚝 서있는 키 큰 나무다.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실물은 훨씬 더 크고 우람하다.
키는 하늘을 찌를 듯 훌쩍 크고, 나무줄기는 두 팔로 감싸 안고도 한참 더 남을 정도로 굵디굵다.
사실은 키가 너무 큰 탓에 눈높이 근처에 있는 나무들만을 보고 지나치는 무심한 여행객 눈에는 잘 안 보일 수도 있다. 오히려, 멀리 저 위 산 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야 비로소 "아!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저기 있었구나..."하고 알아차릴 정도이다.
어찌 보면, 멀찌감치 떨어져야 실체가 더 잘 보이는 나무가 바로 나의 친구, 서양 삼나무다.
나의 친구 나무는 십 년 전 쯤 내가 송광사에서 처음 기도와 자원 봉사를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 일찌감치 '내 친구'로 점찍어 놓은 나무다.
지금과 달리 사찰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던 그 시절...
서양 삼나무는 찾아가서 등을 기대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맘에 담아두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지막한 소리로 말 할 수 있던 유일한 벗이었다.
그리고는 그 후로도 꾸준히 거의 매년 내려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두 팔로 안아보고, 손으로 토닥여주고, 돌아서서 등을 기대고 하면서, 내 안에 쌓여있던 이야기들을 친구 나무에게 들려주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절에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생겨도, 더구나 그중의 몇몇과는 마음을 털어 이야기를 나누는 친밀한 관계가 되어도.. 그와 무관하게, 그와는 별도로, 나와 서양 삼나무의 우정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다면, 내가 일방적으로 삼나무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말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그 중 상당 부분은 그 절에 머물며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좋았던 예불 시간, 혹은 아침 포행 시에 보았던 눈부신 조계산 경치, 혹은 열심히 정진하며 공부하시는 학인 스님들, 혹은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데다가 부지런히 울력하는 도량 이곳저곳의 대중들 등에 관한 이야기...
물론, 대중 속에서 살면서도 외롭다고 느끼거나, 예외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도, 삼나무 친구에게는 간결하게, 그러나 여과하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었다.
반면에, 울력으로 몸이 너무 지쳐있을 때는 별 말 없이 그저, 그 너른 품에 '턱~' 등을 내맡기고, 요사채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누운 듯 세상 편하게 쉬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수직으로 누워 쉬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나무에게 내 몸과 마음을 다 내맡긴 채 쉬면, 잠깐만 쉬어도 푹~ 쉴 수 있기에, 방전되었던 에너지가 쉽사리 재충전되곤 하였다.
서양 삼나무 친구와 사귄 세월이 제법 쌓인 최근에는 나의 도반 몇몇도 저 키 큰 나무가 내 벗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젊은 친구이자 도반인 보리행 민지는 같이 경내를 포행하다가 삼나무 근처를 지나가면, 반갑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띠며, "수심 보살님 친구네요!"라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내 친구지만, 네가 원한다면 네 친구가 될 수도 있어."라고 자못 배포 큰 듯 헛인심을 쓰기도 하였다. 서양 삼나무가 원초적으로 오직 나만의 것이기라도 하였다는 듯...
실은 그렇게 말하는 나의 속내는 뿌듯하고 흡족한 마음뿐이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 둘이 서로를 그렇게 알아가고, 그렇듯 조금씩 친해져가는 현장에 있는 사실이 못내 기분 좋은 것이다.
나무와의 소통...
나무와의 교감...
나무와의 우정...
이쯤에서, 뻐기지 않고, 으스대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삼나무 친구가 아낌없이 베풀어준 큰 그늘에서 나라는 존재는 제법 많이 성장했다. 처음 만날 때 이미 키가 컸었던 삼나무가 더 크고 튼실해지는 세월 동안, 나도 삼나무 곁에서 삼나무와 기를 주고받으며 성장하였다.
다른 사람과 견주어본 성장이 아니라, 내 나름의 성장을 말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발 휘날리는 이 나이에도, 주위 낌새에 아랑곳없이 꿋꿋하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내게 준 삼나무 친구에게 멀리서나마 두 팔로 커다란 하트 하나를 날려 보낸다.
"받으렴, 삼나무 친구야!
나의 우정과 사랑을..."
가까이에서는 크고 편한 그늘을 제공해주고, 멀리에서는 늠름하고 보기 좋은 자태를 드러내주는 나의 친구 서양 삼나무와 많은 사람들이 친구 먹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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