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호강하며 걷는 북한강 자전거길
-운길산역에서 강줄기 거슬러 동으로, 동으로...-
12월 중순도 미처 되지 아니하였었다.
절기상으로는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건만...
함에도, 그날은 최저 영하 8도로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아침 7시 50분 경 운길산 역에 도착해 강변으로 내려가니, 강바람까지 더하여 '오늘 이 길을 어찌 걸으려나...' 은근히 겁이 날 정도로 추웠다.
운길산 역에서부터 춘천까지 이르는 이 자전거 길이 작년 말 개통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라, 그날 걸을 길이 내내 그렇게 강변을 낀 걷기 편한 길인지, 아니면 인적 드물고 외진 길로도 들어서야 하는지 조금 궁금하였다. 헌데 마침 그때 맞은편에서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걸을 때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바람을 더 세게 맞을 것이니, 자전거 객은 얼굴, 머리, 손 등을 단단히 싸매고 있었다. 궁금한 사항을 물은 내게 그 사람은 이렇게 답해 주었다.
"이 길은 이렇게 쭉 뚫려 있어요.
가다가 차도 옆에 난 길을 지나기도 하고, 가게들 늘어선 옆 길을 가기도 하지만..,
춘천 신매대교까지 78km 쭉 뚫려 있어요."
물어보는 쪽이나 대답하는 쪽이나 추위에 입까지 얼어붙을 지경이었지만, 답하는 이의 목소리에는 자부심(?)마저 배어있는 듯했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이의 새롭고 좋은 길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
사실 그렇다.
한가롭게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이, 안전하고 경치 좋은 곳을 걷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나라는 점점 더 많고 다양한 선택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강길 걷기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이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인터넷에 보면, "한국 관광 공사 추천 걷기 여행길"이라는 것이 있다.
길 이름만 보아도 기분 좋아지는 그 길들을 열거해보면 이렇다.
우선, 누구나 한 번은 들어라도 보았을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서울 북한산 둘레길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남해 바래길, 경북 울진의 금강 소나무숲길, 전북 군산의 구불길, 충남 대전의 갑천 누리길, 경기도 여주의 여강길, 경북 영원, 봉화, 청송의 외씨 버선길, 강화 나들길, 서울 몽촌토성 인근의 토성 산성 어울길, 소백산 자락길, 휴전선 DMZ의 평화 누리길, 경북 안동의 유교 문화길, 경북 대구시 동구의 팔공산 올레길, 전북 부안의 변산 마실길, 강원도 양양의 구룡령길(민초들의 옛 고갯길), 충남 대전시 서구의 메타세쿼이야 단풍길, 경북 상주의 낙동강길, 강원도 춘천의 카누 타고 즐기는 유유자적 물레길 등이 있다.
또한, 나 자신도 걸어보았거나 틈나는 대로 걷고 있는 북한강길, 남한강길, 경기도 다산길, 한강나루길, 서울의 한강 자전거길 등이 있고...
여기에, 전국 각지 산과 그 둘레길도 물론 빠질 수 없다.
헌데 그 중에서도 내 자신 너무나 걷고 싶어, 마음속에 곱게 아껴두고 있는 길이 있다.
바로 해파랑길!
이 길은 장장 770km에 이르는 길인데, 아름답고 깨끗한 동해안을 남에서 북까지 (혹은 반대 방향으로) 주파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해파랑 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시작하여, 울산-경주-포항-영덕-울진-삼척, 동해- 강릉-양양, 속초를 거쳐 북쪽의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조성 완료 예정은 올해 말이지만, 대부분 구간이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길이어서 현재에도 이용할 수는 있다 하고... 더구나 자료에 따르면, 이 길의 역사는 저 먼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단다. 즉, 남쪽 땅 경주에서 북녘의 금강산까지 이어지던 '신라 화랑들의 장거리 수련 루트'가 이 길과 겹친다는 것이다.
신라 시대에 살아본 자이건 아니건 간에, 어쨌든 왠지 그리운 향수를 자극하는 길...
천 여 년 전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배어있는 길...
바로 이런 길이기에 기다려진다.
나 자신 언젠가 푸른 바다를 끼고 해파랑길 걸을 날이 소풍 앞둔 초등학생 마냥 기다려진다.
그때가 오면, 걸으며 행복으로 쿵쾅거리는 가슴의 떨림을 어찌 해야 하나?
두 눈에 푸른 바다를 담으며 무한정 걷는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게 되려나?
이런 즐거운 기다림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운길산 역 아래 북한강 길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그곳 강변에는 물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널찍하고 아름다운 수변 공원이 있었다. 조망이 툭 트인 너른 지역에 공원을 잘 가꾸어 놓은 데다, 강 이편저편 막론하고 둥근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져있어, 어디에 대고 셔터를 눌러도 그림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조경이 잘 된 물의 정원 한 쪽에는 연꽃 모양 조각을 얹어 놓은 뱃나들이들 벤치가 있어, 물의 정원에 동양적 운치를 더하여 주었다. 또한, 강변 쪽 한 지점에는 '뱃나들이들 연가'를 새겨 넣은 돌, 또 다른 지점에는 다산의 '열초 산수도' 글과 그림을 베껴 새긴 동판과 돌이 설치되어 있었다.
누구의 글인지 명시되어있지 않았지만, 제목부터 낭만적인 '뱃나들이들 연가'의 내용은 이렇다.
"구름도 산새 따라 내려와
물 안개로 다시 피어나고
두물길도 넘나들며 한 마음 되어
큰 물길로 다시 맺어지고
푸르고 길한 기운이 모인 뱃나들이들에는
생명과 꿈과 인연의 소중함이 가득하여라."
산책로를 따라 물의 정원을 계속 걸어가다 보니, 물의 덕목에 대한 글을 새겨 넣은 돌도 서있었다(시자尸子의 군치君治 편).
"물에는 네 가지 덕(德)이 있으니,
이 땅의 모든 자연물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만물을 통하여 흐르게 하니 인(仁)이며,
맑은 것을 추구하고 탁한 것을 꺼리며
찌꺼기와 더러운 것을 쓸어버리니 의(義)이고
부드러우나 범하기 어렵고 약하지만
강한 것을 능히 이기니 용(勇)이며,
강이나 바다로 흘러 나아감에
나쁜 모든 것을 보듬지만
그 흐름이 겸손하니 지(智)이다."
이런 좋은 글들을 모양 좋은 돌에 새겨 물의 정원 여기저기에 세워놓은 국토해양부의 그 문화적 안목과 센스에 나는 감탄하였다. 심지어, 행정 기관은 그저 행정 기관일 뿐이라 여기던 평소의 사고에서 벗어나, 국토해양부가 괜시리 좋아지기까지 하였다. 힘든 토목 공사를 하는 와중에, 마음의 여유를 내어 문화를 생각해준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서...
물론, 물의 정원은 조경만 빼어난 것이 아니었다.
위에 적었듯 조망도 빼어났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강과 산들의 부드러운 선이 이어졌다. 게다가, 아치형의 뱃나들이교, 나무 데크로 만든 전망대, 디딤돌로 연결된 산책로 등이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여, 걷고 또 걸어도, 보고 또 보아도 좋은 곳이었다. 과연, "푸르고 길한 기운이 모인 뱃나들이들"이라는 표현이 똑 맞는 표현이다 싶었다. 그렇게 길하고 강한 기운이 조금 아래 두물머리에서 남한강 물과 합쳐, 이 나라 수도로 흘러드는 한강물이 되는 것일 터이고...
오래 머물고 싶었던 물의 정원...
그 정원을 아쉬운 마음을 안고 떠났지만, 이후에도 6~7km 정도는 산과 강을 실컷 보며 즐겁게 걸었다.
저번에 한강나루길 걸을 때 보았던 반가운 팻말 '여기는 슬로시티 조안'이 여기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만 저번 마을은 조안리, 이 마을은 송촌리라는 것이 다를 뿐...
북한강의 이 길은 글머리 큰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눈 호강시켜주는 길이었다.
넉넉한 강과 부드러운 모습의 산, 가로수가 늘어선 상쾌한 강변 산책로, 앉아 쉬고 싶은 벤치...
오직 그런 좋은 그림을 보며 걷는 길이었다.
길을 걸으며 나는 새삼 확인하였다.
대한민국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배운 학교 지식이 말 그대로 사실이었음을...
왜냐하면, 걷는 내내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로운 산들이 나타났고, 그 산 아래로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강토를 도배하다시피 우뚝우뚝한 산들, 넘실넘실한 강들이 있는 땅이니, 예로부터 금실로 수놓은 강산이라고 금수강산이라 불렀겠구나... 고개가 끄떡여졌다.
그러다 어느 지점 쯤 부터 강변 옆 자전거 길이 끊겼다.
그리고는, 강변 공간이 여의치 않아 물 위에 기둥을 세운 뒤 수변 길을 놓은 조금 색다른 길, 가게들이 늘어선 차도 바로 옆 길 등 다양한 길을 걸었다. 강을 낀 멋진 길을 그만큼 즐겼으니, 차도 바로 옆의 가게들을 지나는 조금은 시끌시끌한 길도 그럭저럭 좋게 걸어갈 수 있었다.
이런 길, 저런 길, 똑바로 난 길, 굽어진 길 등을 걷다보니, 북한강 야외 공연장이 나왔다.
야외 공연장이라 그런지 공연장 공원에는 음표 조형물이 서 있었을 뿐 아니라, 화장실 벽, 화장실 내부 문짝들에도 온통 즐거운 음악을 연상시키는 음표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이처럼 세심한 배려로 만들어진 야외 공연장이니, 공연이 없을 때에도 공연장 전체 공간에 음악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북한강 야외 공연장을 지나 화도읍 금남리의 북한강로를 걸으면서는, 강변에 으리으리한 전원주택들, 카페, 호텔 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꽤 걸었다 싶은 지점에서 나타난 샛터 삼거리.
삼거리 지점에서 대성리역 방향을 택하여 터널 하나를 통과하고 나자, 다시금 강을 따라 앞으로 쭉 뻗은 기분 좋은 길, 유유자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강 건너 산들 뒤로 눈 덮인 설산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해주는 그런 길이었다.
마침내, 잣의 도시 가평에 이르렀다.
가평에 온 길손을 반긴다는 듯, 자전거 길 옆 널찍한 쉼터 잔디 위에 흰 조약돌로 "희망 행복 가평"이라고 커다란 글씨를 새겨 넣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는 가평 상징 농산물인 잣나무를 도형화한 커다란 철 조각물도 서 있었고...
가평 상징물 쉼터를 지나 다시금 풍경이 여유로워진 강변길을 좀 더 걸으니, 그날 산책의 종점인 대성리역에 당도하였다.
운길산역에서 출발하여 17km를 걸은 그날의 걷기는 오후 중반 쯤에 마무리되었다.
솔찬히 추웠던 아침과는 달리 해가 나는 낮에는 추위가 많이 물러갔었다.
그날은 보통 때보다 좀 많이 걸었기에 발바닥에 무리가 오기는 하였지만, 눈이 시원해지는 좋은 길을 걸었기에 마음은 뿌듯하였다.
눈 호강시켜주는 이런 길이라면, 언제라도 또 걸을 것이다.
꽃 피고 새가 날아오는 계절에는 강변 풍경도 확 바뀔 터이니...
언젠가 그 시절에 또 걸으러 올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칼바람 맞으며 걷는 느낌, 나목들을 감상하며 걷는 느낌, 강에 차가운 물결들이 일렁이는 느낌, 강 건너 눈 덮인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느낌은 이 계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겨울의 북한강 길...
동으로, 동으로 향하는 여정은 아직 더 남아있기에, 앞날을 기약하고 중간 마침표를 찍었다.
구름에 살짝 가려진 해가
물의 정원의 아침을 비추고 있다.
물의 정원.
강굽이를 자연 그대로 살린 하안.
강, 산 그리고 멀리 왼 편에 아치형의 뱃나들이교가 보인다.
물의 정원의 뱃나들이들 벤치.
벤치에 올려놓은 연꽃 모양의 조각과 강물, 먼 데 산들이
물의 정원만의 독특한 풍치를 자아낸다.
물의 정원에 설치된 다산의 '열초 산수도' 글과 그림.
물의 정원.
모양 있게 쪼아낸 돌에 새겨진 '뱃나들이들 연가'.
"물에는 네 가지 덕이 있으니..."
글을 새긴 돌을 설치할 마음을 낸
국토해양부까지 좋아지게 만든
물의 정원 안의 문화적 설치물.
물의 정원에 난 십자형 디딤돌 산책로.
사진에 보듯,
강변 반대 방향에도 먼 데 산들의 실루엣이 저렇듯 아름다웠다.
쭉 뻗어 휘어진 물의 정원 내 디딤돌 산책로.
길, 길, 길의 유혹...
물의 정원에서 이어져 나가는 북한강길 산책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쭉 뻗은 길.
원하는 것은 오직 걸을 수 있는 길 뿐인 길손들을
길 부자로 만들어주는 이 같은 길들...
"I'm slower!"
"느려서 행복합니다."
느린 달팽이가 마냥 행복해 보이는 마을 안내판.
이렇듯 둥근 산, 부드럽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사는 사람들이
뾰족한 마음, 거친 마음을 낼 수 있을까?
모르긴 모르되...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걷다보면
사막의 신기루처럼
갑자기 예쁜 집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북한강변의 예쁜 집.
북한강 길의 자전거 쉼터.
눈길 가는 곳 어디나 강, 강, 강...
산, 산, 산...
북한강변 산책로에 그려진 단아한 문양.
북한강 야외 공연장 공원 안의 음표 조형물.
북한강 야외 공연장 공원 내의 음표 화장실.
이 화장실을 드나들면서는 절로 콧노래가 나올 듯...
화장실 내부 문짝마다 색 색깔로 그려진
음표와 음의 셈 여림 기호.
북한강 강물 옆,
겨울 추위에 바싹 마른 잎사귀들,
그리고 강 건너 산들.
북한강 길 건너편의 설산.
서울은 특별한 도시다.
특별히 아름다운 도시다.
서울 심장부에는 물론,
별로 멀지 않은 이런 곳에도
오지 풍광을 연상케 하는 산들이
수두룩하니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평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가평 소개 문안.
쉼터 잔디 바닥에 흰 조약돌로 만들었다.
가평 군목인 잣나무 형상 조형물.
북한강 자전거 길에도 남한강 자전거 길처럼
이러한 수상 레저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풍치 좋은 곳에서 쉬고 있는 보트들...
대성리역 거의 당도한 지점의 북한강변 풍경.
가을과 겨울 느낌이 혼재해 있다.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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