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곁 흑인 여성의 집중된 순간
-춘천 의암호반 커피집의 외벽 벽화-
춘천역에서 내려 의암댐 쪽으로 걷던 날이었다.
걷다가, 잠시 할 일이 있어 자전거길을 벗어났다.
헌데, 오른 쪽에 '이디오피아 커피집'이라는 까페의 길쭉한 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외벽 한 쪽에 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건물의 구조를 잘 활용하여 그린 그림이었다.
밤색 계통으로 칠해진 창 두개, 그리고 그 창들 아래 벽에 부조로 새겨진 커다란 십자가.
건물이 집인지 작은 교회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십자가가 새겨진 걸로 봐서는 후자인 듯...
건물의 아치형 대문 앞에는 흰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흰색 무슬림 전통 의상을 걸친 나이 든 흑인 여성이 성경인 듯한 작은 책을 두 손에 펼쳐 들고 집중해서 읽고 있다.
바로 그 집중된 순간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경에 열중하여 몰입된 모습!
소박한 외양의 이 여인의 존재가 내면의 진지한 성찰로 빛나는 모습!
기도하는 마음으로 몰입한 순간!
그 순간의 순수한 영혼의 상태는 기독교건, 천주교건, 이슬람교이건, 불교건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나 자신으로 돌아가 있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할 것이기에...
그림 오른 쪽 아래에 아마도 아랍어인듯한 글씨가 적혀 있어, 그림 제목과 화가 이름이 아닐까 싶은데, 아랍어를 모르니 지금으로서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인터넷을 항해하다가,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모델은 놀랍게도 한국 사람이다.
1968년 이 까페를 개업한 창업자 부부의 딸인 조 명숙씨로 현 주인이기도 하다고...1) 헌데, 다른 일간지2)에 나온 사진으로 봐서는 딸인 조씨보다는 창업자인 조씨 어머니가 더 그림 속 흑인 모델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하기는 모녀지간이니 닮은 것이 당연할 것이라...
어쨌거나, 이런 작품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위의 벽화 속 여인을 보았을 때는 한국인이 모델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모델의 피부색을 바꾸고, 섬세한 표정만 달리 표현했는데, 벽화를 감상하는 사람의 눈에 에티오피아 여인으로 비쳐졌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찰나의 집중이 빚어낸 아름다움...
인간 내면의 빛이 외양을 훤히 밝혀주는 모습...
그 모습에 반했었다.
아마도, 겨울 의암호가 뿜어내는 싱싱하고 맑은 기운, 까페 내부에서 은은히 퍼져 나왔을 커피 향기가 이 벽화의 매력에 한 힘 보탰으리라.
-수심修心
♣각주:
1)<주간 경향> 2014년 3월 4일 자 참조.
2)<중앙일보> 2011년 10월 3일 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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