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려한다"
-강남 스타일 버스 기사님-
올해 첫날 1월 1일.
나는 한 해의 첫날을 의미 있게 시작하기 위하여 강남 봉은사에 갔다.
봉은사에서 몇 발작 거리의 코엑스 사거리에 예정되어 있는 9호선 전철 역 -서울시의 문화적, 전통적 이미지를 고려해서라도 '봉은사역'으로 명명되었으면 싶은 그 역-은 아직 몇 개월 더 기다려야 개통될 것이다. 따라서, 선정릉역에서 내린 나는 지상으로 올라가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휴일 중에서도 이름 난 휴일이라 배차 간격이 떠서, 강추위 속에 한참을 기다려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헌데 두 정거장 거리의 봉은사는 나타나지 않고, 버스가 진행할수록 점점 더 낯선 거리가 나타났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버스 앞 쪽의 버스 운전기사석에 가서 물었다. 봉은사 가는 중인데, 왜 봉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거냐고...
친절하게 생긴 중년의 기사님이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설명해 주셨다.
"손님이 목적지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타셨네요.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리셔서, 길 건너 정거장에서 버스를 타세요.
이번 정거장에서 내리면 한참 걸으셔야 되거든요.
그리고, 같은 번호 버스는 환승 할인이 되지 않으니까, 버스 기사한테 방향을 착각해서 갈아타는 거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버스 카드를 다시 찍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내가 내릴 때 다시 한 번 목소리 높여 길 건너 버스 정류장 위치를 말해 주셨다.
나는 "고맙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까지도 이미 친절하고 고마운 기사님이었다...
목적지로 가는 순방향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수 년 전부터 예불 드리러 가끔씩 오는 봉은사 근처에서 왜 방향을 착각했는지 생각해보던 나는 그 이유를 찾아내었다. 이윤즉슨, 선정릉 역사에서 내가 나와야 할 출구가 하필 그때 공사 중이어서 길 반대편 출구로 나오고는, 길을 건너지 않은 채 별 생각 없이 번호만 같은 버스에 올라탔던 것이다!
어쩐지 정류장 모습이 좀 달라진 것 같기는 하였다... 쯧!
또 한참을 기다린 후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헌데,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버스에 올라타면서 역방향 기사님이 내게 하라고 했던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기사님이 큰 소리로 물었다.
"봉은사 가시는 승객 분?"
어쨌거나 그 정거장에서 올라타는 승객은 나뿐이었다.
"네, 접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님이 연이어 덧붙이셨다.
"네~. 교통 카드 찍지 마세요!"
하아!
친절한 기사님이 동료 버스 기사님에게 이미 연락을 해두었던 것이다.
'손님에게 베푸는 자상한 배려란 이런 것이다.'라고 몸소 보여준 기사님!
두 기사님의 통신 연락과 그 배려에 한 해의 시작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인구 초 과밀 도시 서울의 복잡복잡한 버스 정류장에서, (팔을 들어 정차 신호를 보냈음에도) 기다리던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조차 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나 몰라라 '쌩!' 달아나버리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 감동받은 이유를 알 것이다. 더욱이, 운이 별로 없는 날에는 두 대가 연달아 그렇게 꽁무니만 보이며 사라지는 허무하고 황당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자신이 당하는 경우에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팔순을 넘기신 노모가 아픈 다리 참고, 무더위 혹은 강추위 이기며, 정류장에서 수 십분 버스를 기다리시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말을 나중에라도 전해들을 때면, 욱하는 마음에 얼굴도 모르는 그 운전수 양반에게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 생애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그건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서울 지역에 사는 서민 BMW족들1)은 대접받으며 살고 있다. 중앙 버스차로가 생기며, 시내에서건 고속도로에서건 -출퇴근 시간 등 특별히 밀리는 시간 외에는- 다른 차선의 승용차들이 줄지어 밀려있는 상황 속에서도, 버스는 버스 전용 중앙차로로 쌩쌩 다니고 있으니까... 도로 위의 VIP로 대접받는 기분?
서민들은 정말이지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글 제목을 '강남 스타일 버스 기사님'으로 뽑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강남에서만큼은, 가수 싸이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된 서울 강남에서만큼은 그래도 "나는 배려한다" 스타일 운전기사님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배려한다"가 강남 스타일 운전으로 일반화되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물론, "나는 배려한다"가 이 나라 국민들의 일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아니 좋으랴?
-수심修心
♣각주:
1)Bus(Bicycle)-Metro-Walk의 약어로 쓰이는 신조어.
버스-지하철-걷기를 즐기는 이들을 지칭함.
♣사진 설명:
얼마 전, 눈 펑펑 오던 날...
북한강 자전거길의 가평-백양리 사이를 걷다가 찍은 사진.
자전거, 자동차 공용 도로인 이 길에 자동차 두 바퀴 자국이 나 있다.
덕분에 나는 그 바퀴 자국을 밟으며 눈이 수북이 쌓인 눈길 위에서도 좀 더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길 가는 행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 주거나, 누군가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다 주거나, 아침에 빗자루로 골목길을 쓸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직, 간접적으로 도와주거나 하는 행위는 공덕을 쌓는 일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길에서 받은 도움'이 이 글의 주제이기에 위 사진이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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