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중 맞이하였던 까치 까치 설날
-2007년 초 서울 화계사 국제 선원에서-
7년 전, 삼각산 화계사 국제선원에서의 삼칠일 동안거 이야기는 벌써 블로그에 한 번 올렸다.
허나, 그 글에서는 중요 골자만 뽑아 올리느라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러 있다.
그 중 하나다.
내가 동안거 시작한 지 일 주일 째 되던 날은 일요일로, 마침 설날이었다.
새벽 3시 30분.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국제선원 대중 모두가 선방에 모여 108배를 하였다. 108배 때 대중 모두가 동시에 같은 동작을 취하기 위해 치는 죽비는 보통 선원장 현각 스님이나 입승 보행 스님이 치셨는데, 그날은 아마도 현각 스님이 죽비를 드시지 않았나 싶다.
108배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선원 건물을 내려와 바로 옆 건물인 조사당으로 가서, 숭산 스님 영정 앞에서 삼배를 드리고 난 후, 국제선원 대중들만 국제 선원 법당에서 영어 예불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헌데, 음력 정월 초하루는 절에서도 특별한 날이어서 평소와 달리 아침 일정이 좀 빡빡하였다. 때문에, 조사당 참배를 평소처럼 하였는지 여부는 기억에 없는데, 아마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하여, 각자 참배를 하고나서 대적광전에 모이기로 했던 것 같다.
국제 선원 선방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던 보통 때와는 달리, 그날만큼은 드넓은 대적광전에서 전 대중이 참석한 예불을 드리기 위하여...
건물 삼층에 있는 화계사에서 제일 큰 법당인 대적광전에는 화계사 스님들을 비롯한 사찰의 전 대중과 아침 일찍 부지런히 올라온 신도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다 같이 장엄한 설날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는 이어서, 경내 각 법당을 다 같이 돌며 3배씩 올렸다. 해 뜨기 전이라 평소에는 어두컴컴했을 것이나,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특별한 날이었던 그날만큼은 예외적으로 마당 곳곳에 환히 불을 밝혀놓았던 것 같다. 속가 풍속과 별반 다르지 않게..
단체로 법당 순회 삼배를 올린 후 우리가 옮겨간 다음 장소는 바로 보화루!
보화루寶華樓에서는 주지 수경 스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곳에 모인 대중은 스님, 불자 순으로 차례로 주지 스님께 새해맞이 세배를 드렸다. 국제 선원에서 안거하던 우리 차례가 오자 우리는 다 같이 주지 스님께 세배를 드렸다. 스님은 우리 각자에게도 앞서 세배를 드린 다른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연회색, 흰색의 고운 갑사천으로 만든 자그마한 복 주머니 하나와 빳빳한 새 돈을 한 장씩 주셨다. 한민족 대대로 이어온 고유 세시 풍습에 걸맞게...
대중들의 세배가 모두 끝나자, 방안 그득하게 모여 앉은 대중들 앞에서 주지스님은 새해를 맞이하는 덕담을 들려 주셨다(한국어-영어 통역은 우리 중 그 일에 제일 능한 분인 현각 스님이 당연히 맡으셨고...). 방바닥에 따뜻하게 불을 지핀 보화루에 앉아 주지 스님의 넉넉한 덕담을 듣는 대중들의 얼굴은 밝았고, 볼에는 발갛고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봉오리를 맺은 꽃들이 화계사 보화루에 모여 드디어 활짝 핀 느낌이었다고 할까? 다양한 국적의 형형색색 꽃봉오리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잠시나마 웃음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덩치 큰 외국인 거사님이 서툰 동작으로 무겁게 쿵~ 앉으며 세배를 드려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즐겁고 좋았다. 동시에 한 곳에서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며, 한 마음으로 흔쾌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이미 새해 벽두부터 많은 것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보화루 세배가 끝나자마자, 그 길로 국제 선원 대중은 국제 선원 선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원장 스님께 세배를 올렸다. 그랬더니, 선원장 스님도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얼굴, 그리고 한국 어르신들 못잖게(?) 익숙한 동작으로 빳빳한 천 원짜리 새 돈 한 장씩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즐겁게 나누어 주셨다.
새해 예불과 세배가 다 끝나고 나서 방에 돌아온 우리는 주지 스님이 주신 갑사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호기심 가득하게 열어본 주머니 안에는 휴대 전화 걸이용으로 제작된 귀여운 모습의 소형 금칠 복돼지가 들어 있었다. 그 날은 바로 돼지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의미있고 감동적인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돼지해 내내 복돼지가 주는 복을 듬뿍 받으라는 주지 스님의 축원이 담겨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잠시 방에서 쉬고 난 우리는 아침 공양을 하러 1층 공양간에 내려갔다.
내가 젊은 동안거 도반들과 어울려 식탁에 앉아 떡국을 먹고 있는데, 보통 때는 공양간에서 뵐 수 없었던 견향見香 스님이 갑자기 공양간에 들어오셨다. 공양간에 들어서시자마자 곧바로 우리 식탁 곁에 다가오신 견향 스님은 모여 앉은 우리 각자의 팔목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은 돌들로 꿰어진 염주를 하나씩 채워 주셨다. 얼굴에는 스님 특유의 인자하고 환한 미소를 띠신 채... 우리 모두는 노스님의 마음 쓰심에 감동하여, "고맙습니다." 합장하며 그 단주를 받았다. 스님이 주신 단주를 찬 우리 도반들의 얼굴에도 노스님의 어진 미소를 빼닮은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한 겨울이라 비교적 한적하던 절이었는데, 스님들께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정월 초하루 예불도 올릴 겸 겸사겸사 절에 올라온 불자들로 조금은 들썩들썩한 하루였다.
또한, 그날은 국제 선원에서 각자 나름대로 며칠 혹은 몇 주 씩 머물며 동안거를 하던 우리 한국인 불자들에게 두 가지 면에서 참으로 기분 좋고 고마운 날이었다. 첫째는 전통 사찰에서 설날이라는 명절을 어찌 지내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좋았고, 둘째는 절에서 같이 동안거를 나고 있던 외국 스님들, 외국 도반들과 더불어 우리 민족 명절 풍속의 일부를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야속한 세월이 이만큼 지났기에, 좋았던 순간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날을 떠올리니, 마음 가득 행복했던 느낌만은 그대로 되살아났다.
-수심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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